Sokcho-si, Gangwon State, South Korea
time : Jun 22, 2025 9:00 AM
duration : 10h 33m 26s
distance : 8.5 km
total_ascent : 454 m
highest_point : 768 m
avg_speed : 1.4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작년 이맘때 울산바위 리지 산행을 하고 다음날 찾아가려고 했던 곳이 유선대 ‘그리움 둘’ 리지 코스였다. 그러나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대체지로 공룡능선을 탔는데, 그 그리움 둘에 대한 아련한 미련이 남아 있기에 이번에 새로 계획한 리지 산행에 동참하였다.
나로서는 엊그제 설악산 1박 2일 산행을 하고 내려간 직후라서 몸이 어떨지 몰라 망설였는데 다행히 다리가 좀 뻐근한 것 말고는 별 이상이 없기에 선뜻 따라 나섰다. 올해 80 회 생신을 넘기신 상수 형님이 총 대장을 맡으시고, 작년에 등반학교에서 바위 타는 기술을 배우고 한창 바위에 빠져 있는 한섭 님이 보조를 맡았다. 그리고 나와 술람미 님은 초보 바위꾼이라서 선등자가 내려주는 로프를 몸에 매고서야 비로소 바위를 오를 수 있는 하수(下手)들로 정해진 수순에 따른다.
사는 곳이 모두 멀리 떨어져 있기에 우리는 양정역에서 7시에 만나기로 하였다. 한섭 님이 차를 타고 제일 먼저 도착하였고 뒤이어 나와 술람미 님이 도착하였다. 상수 형님은 지하철 환승에 문제가 있어서 7시 조금 넘은 시간에 도착하였다.
원래 계획은 어제(토요일) 산행을 하기로 하였으나 비 예보가 있어서 하루 더 연기하였는데, 오늘은 어디에 내 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큼 날씨가 화창하다. 서울에서 양양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한산하다. 모두 마음이 들떠 있다.
그렇게 한산한 고속도로를 달려 양양 IC로 빠져서 설악산 주차장에 도착하니 9시다. 양정역에서 설악산까지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움 둘
영동 지방에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는지 설악동 넓은 계곡에도 물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계곡이 깊으니 비선대(飛仙臺)까지 이어지는 계곡은 좁은 편이라 물이 모아지니 맑은 물이 활기차게 흐른다.
비선대에서 마등령 방향으로 가파른 돌 계단길을 오른다. 금강굴 입구를 지나 또 100 여 미터 올라 왼편에 칼처럼 날카롭게 서 있는 바위(촛대바위)를 보고 탐방로에서 벗어나 조금 걸어 들어간다. 그곳이 ‘그리움 둘’ 리지 길의 초입이다. 평소 주말에는 리지 꾼들이 모여들어 복잡하다고 하는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10시 30분경이라 부지런한 산꾼들은 다 올라가고 리지 길은 우리가 독차지하게 되었다.
리지 길 시작점 바위 위에 노란색 철판으로 푯말을 붙여 놓았다.
그리움 둘
빛나던 그대 둘 설악에서 그리다
(키르기스스탄 악수, 박기정 최영선)
2004년 7월 23~8월 4일 개척
산바라기알파인클럽
이 리지길을 개척한 사람들의 사연이 그러했다.
유선대/ 그리움 둘에 관한 이야기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리움 둘'은 산에서 사라져 간 그리운 두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2003년 7월22일, 대한산악연맹 산바라기산악회 소속 원정대원 두 명이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의 악수 북벽(해발 5천2백39m) 등정에 나섰다 실종된다. 두 사람은 결국 29일에 가서야 사망이 확인됐다. 박기정(당시 나이 50세)원정대장과 최영선(당시 나이 32세)대원이었다. 만년설로 뒤덮인 악수 북벽은 코스가 험난하기로 유명하며 산바라기산악회의 정상도전 이전에도 여러 산악인들이 목숨을 잃은 곳이기도 하다.
산바라기산악회는 2004년 여름, 키르기스스탄 악수 북벽 등반 중 조난사한 그들의 악우 박기정·최영선씨를 추모하기 위해서 장군봉 남서벽에 바윗길을 개척한다.
그해 7월23일부터 8월6일까지 김성기, 오경훈, 박미숙, 백형선, 박충길 등이 참가하여 모두 6번의 개척작업 끝에 45개의 볼트를 설치했다. 모두 열 한 마디였다.
그리고 ‘그리움 둘’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붙였다.
https://warisid.tistory.com/6483631
무슨 전설처럼 그 사연이 석주길 개척 이야기와 매우 닮았다. 함께 했던 악우(岳友)는 가고 뒤에 남은 친구들이 그들을 그리면서 바위 길을 열어간다.
설악산 최고 등반 코스 유선대 그리움 둘 개척.. : 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wowind/223570315883
그리움 둘의 난이도가 5.7 정도로 쉬운 코스라면서 상수 형님은 한섭 님에게 선등(先登) 기회를 주었다. 이 정도의 난이도라면 북한산 염초봉보다 조금 더 어려운 코스라고 하신다. 상수 형님은 이전에 다섯 번인가 이 코스를 다녀가셨다고 하였다.
그러나 밑에서 올려다본 총 11피치의 그리움 둘 리지 코스는 보는 이의 가슴을 압도한다. 잠시 서서 대략 어느 길로 따라 올라가는지 가늠해보려 하지만 블로그 글을 조금 읽어 본 나로서는 대략적이라도 감을 잡을 수가 없겠다.
그런데 2피치를 선등으로 올라간 한섭 님에게 문제가 발생했다. 갑자기 쿵 하고 묵직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주변에는 다른 사람들이 없기에 분명 먼저 올라간 한섭 님에게 문제가 생긴 것으로 짐작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큰 소리로 물었다. 뒤돌아온 대답은 괜찮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신음 소리도 섞여서 들린다. 다시 정말 괜찮으냐고 물으니 또 괜찮다고 한다. 그가 로프를 고정시키고 빌레이 준비가 되었다고 하여 우리는 차례대로 2피치를 따라 올랐다. 그에게 도착하여 보니 몸은 멀쩡하지만 왼손목에 통증이 심하다고 하였다. 얘기인 즉, 조금 오르다가 바위가 미끄러워 뒤로 떨어졌는데 그 떨어진 곳에 썩은 나무가 있어서 몸을 받쳐 주었고 헬멧과 배낭 덕분에 더 큰 부상은 면했으나 손을 뒤로 짚는 바람에 손목에 부상을 당했다는 것이다.
술람미 님은 가방에서 진통 소염제를 꺼내 주었고, 손목 보호대를 내어 주었다. 한섭 님에게 계속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선등은 못하지만 후등은 가능하겠다고 한다. 결국 상수 형님이 선등 자리를 다시 맡고 우리는 상수 형님이 깔아 놓은 로프를 매고 따라 오른다.
그리움 둘 리치 코스는 밑에서 바라보았을 때 느꼈던 그 느낌 그대로였고 결코 만만하게 볼 쉬운 코스가 아니었다. 그래도 상수 형님은 어떤 젊은이 못지 않게 능수능란하게 바위를 잡고 오른다. 다리 뿐만 아니라 팔과 손가락에도 힘이 있어야 하며 바위에 부착된 쇠 구멍에 퀵드로를 거는 등 종합적으로 기술과 힘을 요한다.
한 피치 두 피치 고도를 높일 때마다 좌우로 펼쳐지는 풍경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비선대의 장군봉이 옆에 보이다가 발 아래로 내려가고 그 반대쪽에는 천화대와 천불동의 바위 봉우리들이 그야말로 파란 불꽃처럼 빛난다. 저게 흑범길이고 그 옆에 석주길이고 위쪽에 범봉 그 위에 노인봉 등 신비스러운 외설악의 풍경이 촘촘히 박혀 있다.
5피치와 8피치에서 어려움이 있었고 손목을 다친 한섭 님이 왼손목을 제대로 쓸 수 없어 고생했지만 우리는 모두 완등할 수 있었다. 유선대 정상에 서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경치가 장관이다.
“경치는 여기가 천화대보다 더 좋아요.” 설악산 이곳저곳을 다 누비며 다니신 상수 형님의 말씀이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형제폭포가 보이는데 가뭄이라서 폭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 앞에는 두개의 바위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데 누군가 그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형제 폭포 앞에 있는 두 바위 봉우리니까 형제봉이라고 하면 좋겠네요.”하고 내가 대답하였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정말 그 봉우리 이름이 형제봉이라고 한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사람들의 상상력도 대부분 고만고만 한가 보다.
정상에서 잠시 풍경을 감상하고 하강하였다. 전에 마등령에서 하산할 때 이곳에서 로프를 타고 하강하던 사람들을 보면서 멋지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내가 그 주인공이 되어 본다. 물론 관객은 없다. 오후 여섯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등산객들은 모두 하산하고 산길은 절간처럼 조용하다.
유선대 리지 산행은 끝났지만 이제 비선대까지 800 미터 돌계단 급경사 길을 걸어 내려가야 한다.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최고로 고통스러운 코스 중 하나다. 우리는 산을 내려와 비선대 위쪽 계곡에 발을 담그고 열을 식혔다. 그리고 설악 계곡의 맑은 물로 목을 적혔다.
지는 햇살이 설악산의 높은 봉우리를 붉게 물들인다.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어디에 있어도 그리운 설악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