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년 을씨년스러운 소백산을 걷는다.

대피소의 취침 소등시간은 저녁 8시다. 그 전에 취사실에서 햄버거 등으로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6시가 지났어도 서쪽 산 너머로 노을이 길게 이어진다. 제2연화봉 대피소에 차가운 소백산 바람이 쉼 없이 몰아친다. 대피소 내 전광판에는 비로봉이 영하 10도를 오르내린다. 바람은 북서풍이 초속 6.6 미터. 굉장히 강한 바람이다. 잠을 자는 대피소 내에 기온도 서늘하다. 낮에 올라오면서 땀에 찬 겉옷을 널어 놓아 조금 말랐다. 예전에는 담요를 대여해 주었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침구를 일체 준비하지 않았기에 옷을 입은 채 잠을 청했다. 집에서 하듯이 버릇처럼 유튜브를 틀어놓고 잠들었는데 한참 자다가 깼더니 이제 겨우 자정이 조금 넘었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잠시 밖으로 나가보니 차가운 밤하늘에 별들이 초롱초롱 빛난다.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 새벽이 되었고 세 시가 조금 지나자 벌써 산행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다. 소산 형님도 화장실을 다녀오고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샌 것 같은 나도 잠시 화장실을 다녀와 조금 더 잠을 청하여 보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다. 이따가 걷다 보면 졸음은 달아날 터이다. 아침은 어젯밤에 미리 사 놓은 햇반과 김이었다. 그리고 계란과 귤 하나. 지나치게 간소하다. 디저트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모두 전자 레인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옆에서는 경상도에서 올라온 젊은이들인지 꽤 시끌벅적하게 떠들면서 고기를 구워 먹고 라면을 끓여먹는다. 기대했던 찬란한 일출(日出)은 없었다. 짙은 안개가 산 전체를 덮어 놓았다. 바람도 제법 세게 분다. 공기가 품고 온 물기가 난간에 달라붙어 작은 성애를 만들었다. 은근히 비로봉의 얼음꽃이 기대된다. 연화봉(蓮花峰) 원래 여기서 새 해 일출을 보고 출발하려 계획하였으나 짙은 안개로 인해 해가 뜨지 않으니 7시 30분 대피소를 나와 산행을 시작하였다. 연화봉으로 향하는 너른 산길에는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있었다. 아이젠을 차자고 하니 소산 형님은 연화봉 아래 화장실에서 바람을 피해가며 채비를 차리자고 하신다. 연화봉에는 바람이 더욱 강하게 불었다. 아무것도 바람을 막을 것이 없으니 그대로 몰려와 사람을 때리고 달아난다. 발에는 발토시를 차고 두터운 바지와 외투를 입은 데다 넥 워머라고 하는 목도리로 얼굴까지 가리고 모자를 썼으니 왠만한 바람은 몸을 파고 들어올 생각을 못하지만, 사진을 찍으려고 장갑을 벗으면 바늘로 찌르듯 손에 통증이 온다. 날씨만 좋으면 정상석 앞에서 사진도 찍고 멀리 비로봉도 바라보면서 한동안 머물다 내려가겠지만, 이런 궂은 날씨에 움직이지 않고 오래 머물 수가 없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풍경을 잠시 살펴보고는 금방 산을 내려간다. 비로봉(毘盧峯 1439.5 미터) 소백산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가을의 모습이 현격하게 다르다. 산길에는 눈이 많이 쌓여서 단단하게 굳어 있다.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발이 푹푹 빠진다. 여름내 짙은 그늘을 만들었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마구 흔들어 댄다. 어쩌면 이 산의 나무들은 겨울 내내 저렇게 바람과 힘든 씨름을 이어갈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인간에게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저렇게 잘 살아 가다가 조금 더 힘에 부치면 가지가 부러지고 둥치가 꺾이기도 한다. 바람에 눈발이 휘휘 불어온다. 동장군이 제세상을 만난 듯 종횡무진 숲 속을 헤집고 날아다닌다. 봄에 찬란한 철쭉꽃을 피웠던 나무들이 벌써 겨울 옷으로 갈아 입었다. 가는 나뭇가지에 하얀 얼음 꽃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나무 아래 풀밭에는 마른 풀들이 일제히 바람 반대방향으로 누운 채 한없이 바람에 휘날린다. 산 안개는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긴 나무 계단 길 끝은 안개에 묻혀 있다. 원래 계획은 국망봉을 거쳐 늦은맥이에서 새밭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망이 없다는 핑계로 우리는 천동 계곡으로 하산하기로 하였다. 주목 감시소에 들어가 잠시 바람을 피하면서 간식을 먹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은 상상으로 채워서 비로봉을 바라본다. 주목 숲 위쪽으로 심어 놓은 분비나무들이 제법 많이 퍼져 있다. 저 나무들이 점점 퍼져서 정상부위까지 자라나면 비로봉의 동장군도 어쩌면 더 이상 심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 분비나무가 자라나기 전에 동장군이 먼저 쓰러트려 버릴 지도 모른다. 이 치열한 싸움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바람은 등 뒤에서 불어댄다. 가만히 있어도 등 떠밀려 올라간다. 비로봉 정상은 한산하다. 너무 추워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삼가리쪽 바람이 덜 부는 곳에서 잠시 서서 경치를 구경하다가 내려가는 분위기다. 북서쪽에서 불어대는 소백산의 칼바람은 소리도 엄청나지만 장갑 벗은 손에 전해지는 통증은 말할 수 없이 강하다. 봉우리에서 내려가는데 얼굴이 발갛게 부어 오른 아가씨가 “저기가 정상인가요? 정말 저기가 비로봉 끝인가요?”하고 감격스러워 한다. 새 해 첫 날 소백산 칼바람을 맞으러 오는 사람들은 뭔가 대단한 결심을 하려는 사람들이거나 반성할 것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새 해 첫 날 조용히 집안에 앉아 친구들과 전화로 수다나 떨면서 보내도 좋을 텐데 굳이 이렇게 매서운 바람을 맞으러 오는 사람들은 사람 사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느껴본 사람들일 터이다. 천동계곡 소백산과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산을 내려가다가 뒤돌아보니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아마 우리가 너무 일찍 올라온 탓도 있으리라. 천동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도 눈이 두텁게 쌓여 있어 걷는데 편안하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또 천년을 지낸다는 장수목 주목 숲을 지나고, 길 가에 심어놓은 분비나무 숲길을 지난다. 숲 속이라서 그런지 능선에 가려져서 그런지 이 천동계곡은 바람이 불지 않는 무풍지대다. 천동쉼터를 지나 조금 더 내려오니 얼음으로 덮여 있는 계곡이 나온다. 전형적인 한국의 겨울 풍경을 보려면 소백산으로 가야 한다. 올 겨울이 가기 전에 눈이 내리면 다시 한 번 소백산을 찾아 와야겠다.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또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내 소중한 추억을 만나러 와 봐야겠다.

Hiking/Backpacking

Danyang-gun, Chungcheongbuk-do, South Korea
bethewise photo
time : Jan 1, 2025 7:26 AM
duration : 6h 1m 37s
distance : 14.6 km
total_ascent : 542 m
highest_point : 1466 m
avg_speed : 2.8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대피소의 취침 소등시간은 저녁 8시다. 그 전에 취사실에서 햄버거 등으로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6시가 지났어도 서쪽 산 너머로 노을이 길게 이어진다. 제2연화봉 대피소에 차가운 소백산 바람이 쉼 없이 몰아친다. 대피소 내 전광판에는 비로봉이 영하 10도를 오르내린다. 바람은 북서풍이 초속 6.6 미터. 굉장히 강한 바람이다. 잠을 자는 대피소 내에 기온도 서늘하다. 낮에 올라오면서 땀에 찬 겉옷을 널어 놓아 조금 말랐다. 예전에는 담요를 대여해 주었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침구를 일체 준비하지 않았기에 옷을 입은 채 잠을 청했다. 집에서 하듯이 버릇처럼 유튜브를 틀어놓고 잠들었는데 한참 자다가 깼더니 이제 겨우 자정이 조금 넘었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잠시 밖으로 나가보니 차가운 밤하늘에 별들이 초롱초롱 빛난다.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 새벽이 되었고 세 시가 조금 지나자 벌써 산행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다. 소산 형님도 화장실을 다녀오고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샌 것 같은 나도 잠시 화장실을 다녀와 조금 더 잠을 청하여 보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다. 이따가 걷다 보면 졸음은 달아날 터이다. 아침은 어젯밤에 미리 사 놓은 햇반과 김이었다. 그리고 계란과 귤 하나. 지나치게 간소하다. 디저트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모두 전자 레인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옆에서는 경상도에서 올라온 젊은이들인지 꽤 시끌벅적하게 떠들면서 고기를 구워 먹고 라면을 끓여먹는다. 기대했던 찬란한 일출(日出)은 없었다. 짙은 안개가 산 전체를 덮어 놓았다. 바람도 제법 세게 분다. 공기가 품고 온 물기가 난간에 달라붙어 작은 성애를 만들었다. 은근히 비로봉의 얼음꽃이 기대된다. 연화봉(蓮花峰) 원래 여기서 새 해 일출을 보고 출발하려 계획하였으나 짙은 안개로 인해 해가 뜨지 않으니 7시 30분 대피소를 나와 산행을 시작하였다. 연화봉으로 향하는 너른 산길에는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있었다. 아이젠을 차자고 하니 소산 형님은 연화봉 아래 화장실에서 바람을 피해가며 채비를 차리자고 하신다. 연화봉에는 바람이 더욱 강하게 불었다. 아무것도 바람을 막을 것이 없으니 그대로 몰려와 사람을 때리고 달아난다. 발에는 발토시를 차고 두터운 바지와 외투를 입은 데다 넥 워머라고 하는 목도리로 얼굴까지 가리고 모자를 썼으니 왠만한 바람은 몸을 파고 들어올 생각을 못하지만, 사진을 찍으려고 장갑을 벗으면 바늘로 찌르듯 손에 통증이 온다. 날씨만 좋으면 정상석 앞에서 사진도 찍고 멀리 비로봉도 바라보면서 한동안 머물다 내려가겠지만, 이런 궂은 날씨에 움직이지 않고 오래 머물 수가 없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풍경을 잠시 살펴보고는 금방 산을 내려간다. 비로봉(毘盧峯 1439.5 미터) 소백산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가을의 모습이 현격하게 다르다. 산길에는 눈이 많이 쌓여서 단단하게 굳어 있다.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발이 푹푹 빠진다. 여름내 짙은 그늘을 만들었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마구 흔들어 댄다. 어쩌면 이 산의 나무들은 겨울 내내 저렇게 바람과 힘든 씨름을 이어갈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인간에게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저렇게 잘 살아 가다가 조금 더 힘에 부치면 가지가 부러지고 둥치가 꺾이기도 한다. 바람에 눈발이 휘휘 불어온다. 동장군이 제세상을 만난 듯 종횡무진 숲 속을 헤집고 날아다닌다. 봄에 찬란한 철쭉꽃을 피웠던 나무들이 벌써 겨울 옷으로 갈아 입었다. 가는 나뭇가지에 하얀 얼음 꽃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나무 아래 풀밭에는 마른 풀들이 일제히 바람 반대방향으로 누운 채 한없이 바람에 휘날린다. 산 안개는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긴 나무 계단 길 끝은 안개에 묻혀 있다. 원래 계획은 국망봉을 거쳐 늦은맥이에서 새밭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망이 없다는 핑계로 우리는 천동 계곡으로 하산하기로 하였다. 주목 감시소에 들어가 잠시 바람을 피하면서 간식을 먹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은 상상으로 채워서 비로봉을 바라본다. 주목 숲 위쪽으로 심어 놓은 분비나무들이 제법 많이 퍼져 있다. 저 나무들이 점점 퍼져서 정상부위까지 자라나면 비로봉의 동장군도 어쩌면 더 이상 심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 분비나무가 자라나기 전에 동장군이 먼저 쓰러트려 버릴 지도 모른다. 이 치열한 싸움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바람은 등 뒤에서 불어댄다. 가만히 있어도 등 떠밀려 올라간다. 비로봉 정상은 한산하다. 너무 추워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삼가리쪽 바람이 덜 부는 곳에서 잠시 서서 경치를 구경하다가 내려가는 분위기다. 북서쪽에서 불어대는 소백산의 칼바람은 소리도 엄청나지만 장갑 벗은 손에 전해지는 통증은 말할 수 없이 강하다. 봉우리에서 내려가는데 얼굴이 발갛게 부어 오른 아가씨가 “저기가 정상인가요? 정말 저기가 비로봉 끝인가요?”하고 감격스러워 한다. 새 해 첫 날 소백산 칼바람을 맞으러 오는 사람들은 뭔가 대단한 결심을 하려는 사람들이거나 반성할 것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새 해 첫 날 조용히 집안에 앉아 친구들과 전화로 수다나 떨면서 보내도 좋을 텐데 굳이 이렇게 매서운 바람을 맞으러 오는 사람들은 사람 사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느껴본 사람들일 터이다. 천동계곡 소백산과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산을 내려가다가 뒤돌아보니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아마 우리가 너무 일찍 올라온 탓도 있으리라. 천동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도 눈이 두텁게 쌓여 있어 걷는데 편안하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또 천년을 지낸다는 장수목 주목 숲을 지나고, 길 가에 심어놓은 분비나무 숲길을 지난다. 숲 속이라서 그런지 능선에 가려져서 그런지 이 천동계곡은 바람이 불지 않는 무풍지대다. 천동쉼터를 지나 조금 더 내려오니 얼음으로 덮여 있는 계곡이 나온다. 전형적인 한국의 겨울 풍경을 보려면 소백산으로 가야 한다. 올 겨울이 가기 전에 눈이 내리면 다시 한 번 소백산을 찾아 와야겠다.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또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내 소중한 추억을 만나러 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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