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2024 마지막 산행은 소백산으로

집에서 출발할 때는 여유가 있었다. 시장을 지나면서 김밥과 떡을 샀다. 여전히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지하철을 타고 왕십리를 가면서 도착예정 시간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간신히 시간 맞춰서 도착할 것 같았다. 그리고 왕십리 역 플랫폼에서 눈 앞에서 떠나가는 용문행 전철을 보았다. 다음 차는 20 분 뒤에나 온다. 그 차를 타면 11시 30 분에 청량리 도착할 것이다. 5분 안에 차에서 내려 KTX 플랫폼으로 뛰어야 하는데 확신이 안 선다. 결국 택시를 불렀다. 지하철로 가면 한 정거장, 3분 거리인데 카카오 택시 기사와 통화하면서 위치를 확인하고 곧바로 탈 수 있었다. 겨울 치고는 천금같이 귀한 날씨다. 햇볕은 봄날처럼 따사롭고 하늘은 가을처럼 맑고 푸르다. 기차 창밖으로 지나가는 예봉산, 용문산에 여유로운 시선을 던져 본다. 겨울 초입에 몇 번 내린 눈이 이제는 다 녹았나 보다. 훈훈한 기차 안에서 내다보는 창밖의 날씨는 정말 봄볕이 따사로운 기운을 뿜어내는 것 같다. 상원주, 원주, 봉양, 제천을 지나고 단양이 가까워진다. 허리에 깊은 상처를 입은 바위산이 나타난다. 그런 산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산 아래 또는 중간쯤에 컨베이어 벨트를 연결한 큰 공장들이 즐비하다. 우리나라 건설경기를 이끌었던 시멘트 공장들이 한 낮의 단조로움을 즐기는 듯하다. 오늘이 갑진년(甲辰年) 마지막 날이다. 굳이 시간을 의식하고 사는 성격은 아니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이렇게 세시풍속으로 엮여 있으니 나의 의식도 그에 따라간다. 내일이면 새 해, 을사년(乙巳年)이다. 1905 년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된 지 120년 째 되는 해다. 오후 2시 제 시간에 맞춰 단양역에 도착했다. 죽령으로 가는 버스는 3시쯤에 지나간다. 이곳 문화에 정통한 소산 형님을 따라 남한강 선착장을 지나 멀리 단양 시내가 보이는 곳까지 걸었다. "예전에는 기찻길이 강 건너에 있었어. 그리고 저기 보이는 저 섬이 시루섬(증도(甑島))인데 지금 저렇게 작아 보이지만 이 충주댐이 생기기 전에는 꽤 컸어. 그리고 예전에는 거기에 사람들이 많이 살았지. 그 섬 가운데에 높은 물 탱크가 있었는데 1972년 대홍수 때 사람들이 모두 그 물 탱크로 기어 올라가서 목숨을 건졌지. 아마, 어린 아이 하나가 희생됐을 거야." 소산 형님은 시선을 더 아래쪽으로 던져 잘 보이지도 않는 마을을 가리키며 말씀을 이어간다. "그리고 저 아래 있는 마을 이름이 '수양개' 인 것은 버드나무가 있는 포구라서 그렇고, 또 그 아래쪽 마을은 '애곡리'라고 하는데 쑥 애자(艾)를 쓰는 거야. 쑥이 많이 난다고 해서 애곡리라고 부른다는데 나는 그게 잘 못되었다고 봐. 쑥이야 우리나라 어딜 가나 많이 나는데 굳이 여기만 쑥 나는 골짜기라는 지명을 붙인다는 것이 이상하잖어? 나는 쑥이 아니라 숯을 만들어서 뱃사람들에게 제공하던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숯골’을 ‘쑥골’로 발음했는데 그것을 한자화 하다 보니 애곡리(艾谷里)로 변한 거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버스 정류장으로 되돌아가 버스 시간표를 보니 3시 5분에 단양 터미널을 출발하여 이 단양역에 3시 15분 쯤 지나가는 것으로 나온다. 죽령(竹嶺) 원래 소백산은 겨울 바람으로 악명을 떨치는 곳이다. 특히 소백산의 정상인 비로봉의 칼바람은 산을 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터이다. 이 죽령도 비로봉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갈 만큼 겨울 바람이 드센 곳인데 오늘은 어르신 대접한다고 바람이 잠잔다며 소산 형님이 너스레를 떠신다. 아까 버스를 기다리며 떡을 조금 먹었지만 배가 출출하여 죽령 특산품 가게에 들어가서 기웃거려 보니 온통 몸에 좋다는 약초와 꿀 뿐이고 당장 배를 채울 만한 것이라곤 건빵 뿐이다. '내가 감빵 주세요'하고 말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피식 웃는다. 감빵이 아니고 건빵이란다. 오늘 12.3 내란사태로 윤 석열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그를 체포하려는 경찰과 이를 막으려는 대통령 지지자들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비추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 진다. 연화봉의 저녁 노을 연화봉 대피소로 오르는 길은 편안하다. 아래쪽은 눈이 다 녹아서 콘크리트 길이다. 중간 쯤 오르니 눈이 제법 깔리고 하산하는 사람들은 아이젠을 착용하고 스틱에 의존한 채 조심스럽게 걷는다. 우리더러도 위에 미끄러우니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노부부가 모처럼 산행을 나섰나 보다. 푸르기만 하던 맑은 하늘이 저물어간다. 해는 산그리메 위로 아직은 멀찍이 떨어져 긴 그림자를 비친다. 나뭇가지 사이로 삐져나온 황금빛이 하얀 눈을 붉게 물들인다. 노을이 지고 있다. 서편으로 낮게 깔린 산그리메 위로 붉은 기운이 길게 펼쳐진다. 아름답다. 이것이 2024년 마지막날의 일몰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더욱 특별해 보인다. 흔히 다사다난했던 일 년이라고 말하지만 유독 올 해만큼은 평생 겪어보지 못할 일들이 참 많았던 것 같다. 특히 마지막 달에 일어났던 12.3 내란 사태와 무안 공항 비행기 사고는 많은 이들에게 당혹감과 무기력증을 불러일으킨 아주 큰 사고였다. 해가 지고 빈 하늘에 노을이 비친다. 대피소에서 자리를 배정받고 취사실에 가서 햄버거와 계란으로 저녁을 먹었다. 한 해를 넘기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 저녁노을은 서쪽 빈 하늘 끝자리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내일 아침 새 해가 밝아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줄 새 태양이 떠 오르길 기대한다.

Sightseeing

Danyang-gun, Chungcheongbuk-do, South Korea
bethewise photo
time : Dec 31, 2024 2:19 PM
duration : 3h 15m 34s
distance : 23.5 km
total_ascent : 1300 m
highest_point : 1418 m
avg_speed : 9.9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집에서 출발할 때는 여유가 있었다. 시장을 지나면서 김밥과 떡을 샀다. 여전히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지하철을 타고 왕십리를 가면서 도착예정 시간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간신히 시간 맞춰서 도착할 것 같았다. 그리고 왕십리 역 플랫폼에서 눈 앞에서 떠나가는 용문행 전철을 보았다. 다음 차는 20 분 뒤에나 온다. 그 차를 타면 11시 30 분에 청량리 도착할 것이다. 5분 안에 차에서 내려 KTX 플랫폼으로 뛰어야 하는데 확신이 안 선다. 결국 택시를 불렀다. 지하철로 가면 한 정거장, 3분 거리인데 카카오 택시 기사와 통화하면서 위치를 확인하고 곧바로 탈 수 있었다. 겨울 치고는 천금같이 귀한 날씨다. 햇볕은 봄날처럼 따사롭고 하늘은 가을처럼 맑고 푸르다. 기차 창밖으로 지나가는 예봉산, 용문산에 여유로운 시선을 던져 본다. 겨울 초입에 몇 번 내린 눈이 이제는 다 녹았나 보다. 훈훈한 기차 안에서 내다보는 창밖의 날씨는 정말 봄볕이 따사로운 기운을 뿜어내는 것 같다. 상원주, 원주, 봉양, 제천을 지나고 단양이 가까워진다. 허리에 깊은 상처를 입은 바위산이 나타난다. 그런 산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산 아래 또는 중간쯤에 컨베이어 벨트를 연결한 큰 공장들이 즐비하다. 우리나라 건설경기를 이끌었던 시멘트 공장들이 한 낮의 단조로움을 즐기는 듯하다. 오늘이 갑진년(甲辰年) 마지막 날이다. 굳이 시간을 의식하고 사는 성격은 아니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이렇게 세시풍속으로 엮여 있으니 나의 의식도 그에 따라간다. 내일이면 새 해, 을사년(乙巳年)이다. 1905 년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된 지 120년 째 되는 해다. 오후 2시 제 시간에 맞춰 단양역에 도착했다. 죽령으로 가는 버스는 3시쯤에 지나간다. 이곳 문화에 정통한 소산 형님을 따라 남한강 선착장을 지나 멀리 단양 시내가 보이는 곳까지 걸었다. "예전에는 기찻길이 강 건너에 있었어. 그리고 저기 보이는 저 섬이 시루섬(증도(甑島))인데 지금 저렇게 작아 보이지만 이 충주댐이 생기기 전에는 꽤 컸어. 그리고 예전에는 거기에 사람들이 많이 살았지. 그 섬 가운데에 높은 물 탱크가 있었는데 1972년 대홍수 때 사람들이 모두 그 물 탱크로 기어 올라가서 목숨을 건졌지. 아마, 어린 아이 하나가 희생됐을 거야." 소산 형님은 시선을 더 아래쪽으로 던져 잘 보이지도 않는 마을을 가리키며 말씀을 이어간다. "그리고 저 아래 있는 마을 이름이 '수양개' 인 것은 버드나무가 있는 포구라서 그렇고, 또 그 아래쪽 마을은 '애곡리'라고 하는데 쑥 애자(艾)를 쓰는 거야. 쑥이 많이 난다고 해서 애곡리라고 부른다는데 나는 그게 잘 못되었다고 봐. 쑥이야 우리나라 어딜 가나 많이 나는데 굳이 여기만 쑥 나는 골짜기라는 지명을 붙인다는 것이 이상하잖어? 나는 쑥이 아니라 숯을 만들어서 뱃사람들에게 제공하던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숯골’을 ‘쑥골’로 발음했는데 그것을 한자화 하다 보니 애곡리(艾谷里)로 변한 거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버스 정류장으로 되돌아가 버스 시간표를 보니 3시 5분에 단양 터미널을 출발하여 이 단양역에 3시 15분 쯤 지나가는 것으로 나온다. 죽령(竹嶺) 원래 소백산은 겨울 바람으로 악명을 떨치는 곳이다. 특히 소백산의 정상인 비로봉의 칼바람은 산을 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터이다. 이 죽령도 비로봉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갈 만큼 겨울 바람이 드센 곳인데 오늘은 어르신 대접한다고 바람이 잠잔다며 소산 형님이 너스레를 떠신다. 아까 버스를 기다리며 떡을 조금 먹었지만 배가 출출하여 죽령 특산품 가게에 들어가서 기웃거려 보니 온통 몸에 좋다는 약초와 꿀 뿐이고 당장 배를 채울 만한 것이라곤 건빵 뿐이다. '내가 감빵 주세요'하고 말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피식 웃는다. 감빵이 아니고 건빵이란다. 오늘 12.3 내란사태로 윤 석열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그를 체포하려는 경찰과 이를 막으려는 대통령 지지자들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비추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 진다. 연화봉의 저녁 노을 연화봉 대피소로 오르는 길은 편안하다. 아래쪽은 눈이 다 녹아서 콘크리트 길이다. 중간 쯤 오르니 눈이 제법 깔리고 하산하는 사람들은 아이젠을 착용하고 스틱에 의존한 채 조심스럽게 걷는다. 우리더러도 위에 미끄러우니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노부부가 모처럼 산행을 나섰나 보다. 푸르기만 하던 맑은 하늘이 저물어간다. 해는 산그리메 위로 아직은 멀찍이 떨어져 긴 그림자를 비친다. 나뭇가지 사이로 삐져나온 황금빛이 하얀 눈을 붉게 물들인다. 노을이 지고 있다. 서편으로 낮게 깔린 산그리메 위로 붉은 기운이 길게 펼쳐진다. 아름답다. 이것이 2024년 마지막날의 일몰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더욱 특별해 보인다. 흔히 다사다난했던 일 년이라고 말하지만 유독 올 해만큼은 평생 겪어보지 못할 일들이 참 많았던 것 같다. 특히 마지막 달에 일어났던 12.3 내란 사태와 무안 공항 비행기 사고는 많은 이들에게 당혹감과 무기력증을 불러일으킨 아주 큰 사고였다. 해가 지고 빈 하늘에 노을이 비친다. 대피소에서 자리를 배정받고 취사실에 가서 햄버거와 계란으로 저녁을 먹었다. 한 해를 넘기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 저녁노을은 서쪽 빈 하늘 끝자리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내일 아침 새 해가 밝아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줄 새 태양이 떠 오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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