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outh Korea
time : Mar 28, 2025 8:17 AM
duration : 3h 41m 16s
distance : 19.2 km
total_ascent : 497 m
highest_point : 72 m
avg_speed : 5.2 km/h
user_id : jangyongkil39
user_firstname : 아이
user_lastname : 남대천
청계천 살림의 어제 오늘 내일
바람이 땅과 하늘 사이를 열고 물이 사람 사이로 푸른 길을 내었으니 오늘 2005년 10월 1일 어둠에 같혀 있던 청계천이 마침내 시민의 품으로 살아서 돌아왔다 청계전 위에 콘크리트, 뚜껑을 덮기 시작한 1958년을 기점으로 셈하면 실로 47년 만의 일이다 이는 사람살이와 자연의 한살림이 비로소 한통속으로 어우러지게 되었다는 뜻이며 6백년 ,고도 우리의 서울이 한 시대를 갈음하고 생명의 도시로 세계 속에 다시 태어났다는 뜻이다 본래 청계천의 이름은 개천 이이다 북으로는 기세 드높은 북악이 있고 그 좌우에 낙산과 인왕이 호위하여 섰으며 남으로는 부드럽게 송은 남산이 터를 잡은 바 그안의 너른 분지가 사철 비옥하고 밝아서 일찍이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으로 삼았던 것이 정도 서울의 탄생이다 그러나 비가 오면 도성의 동서를 가로질러 흐르는 내의 물길이 막히어 백성들의 살릴살이가 물에 잡기고 사람과 사람 사이 또한 자꾸 끊어지는지라 이를 안타깝게 여긴 3대 임금 태종이 홍학인간의 뜻을 쫒아 만백성을 널리 이롭게 하고자 조정에 개거 도감을 설치하고 물길을 크게 고치니 개천이란 이름이 서울 여기에서 생겨났다 이어 4대 임금 세종 역시 개천은 물론 개천으로 흘러드는 실개천까지 살피고 돌보면서 한편으로는 대수.평수.갈수를 나타내는 수표를세워 백성들의 물난리를 미리 막아내게했고 이로서 개천의 쓰임새는 도성의 더러운것을 흘려보내는 생활 하천으로 확고히 정해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후 300여 년 동안 크게 돌보는이가 없었다. 개천엔 다시 흙과 모래가 쌓이고 갖가지 살림 찌커기들이 물길을 가로 막아 물난리가 자주 나는지라 영조때 이르러 조정에 준 천사를 두고에 두고서 1760년 연인원 20여만 명을 동원하여 바닥을 깊히 파내고 양안에 석축을 쌓아 물길을 새로 내였으니 이른바 경진준천이 바로 그것이다 번암 채재공은 당시에 쓴 준천가를 통해 양쪽 언덕 10리길 시위처럼 곧바르고 삼영의 석축공사 귀빠진곳 하나 없네 라고 새롭게 물길을연 개천을 칭송하였다
청계천으로 불린것은 1900년대에 들어와서 부터이다
일제는 오과수문을 비롯한 옛 다리들을 헐어 없앤 뒤 콘크리트 다리를 놓았고 도성 제일의 다리로 불리던 광동교 위엔 볼생사나운 전찾길을 만들었으며 경진준천 때 만든 본래의 석축을 들어내고 새로 둑을 쌓았다 이로써 청계천은 문화와 전통이 긷든 본래의 아름다운 맵시를 잃고 말았다 해방 후에도 청계천변의 환경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6:25 동란을 거치면서 판자촌이 천변을 뒤덮었고 흐르는 물에선 악취가 났다 이에 이미 생명이 긷들 수 없는 죽은 물이 되고 만 청계천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복개가 결정된 것은 1958년의 일이었다 그 후 1958년부터 1977년 사이 20여 년에 걸쳐 황교에서 신답철교 사이의 청계천이
단계적으로 콘크리트 뚜껑 밑에 완전히 묻혔고 그 위로 길이 59키로미터 폭 12미터의 고가도로가 우뚝 섰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개발시대의 효율성만을 앞세워 지은 고가도로와 복개된 청계천은 더 많은 그늘과 문제를 드러냈다 세계 속의 도시로 거듭날 서울의 아름다움을 결정적으로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넓은 콘크리트 구조물과 복개도로 지하의 유독카스가 시민의 한전과 건강을 위협하며 더 이상 방치활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일시적인 수리 등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사
실을 직시한 이명박 시장은 오랫동안 해외 사레 등을 검토하여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세위 당선한 뒤 마침내 청계천 복원을 공식 선연하였다 이것은 청계천을 문화와 전통이 깃든 본래의 자리로 되둘려 놓자는 것이었고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의 살림터 서울을 생명가치와 문화가치 중심의 세계적인 터전으로 탈바꿈 시키겠다는 뜻 이었다 세계는 이를 가리켜 꿈의 계획이라 불렀다 이명박 시장은 확고한 신넘과 담대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청계천 복원을 실무적은로 이끌 청계천 추진 본부 학술적 연구를 뒷발침활 청계보복원지원연구단 그리고 전문가와 시민 대표들로 구성한 청계천복원시민 위원회를 꾸리고 이내 역사성과 세계성을 함께 아우르는 의미 깊은 대역사의 진군나팔을 울렸다 시인들의 열렬한 성원과 지역 상인돌의 대승적인 협조가 큰 힘이되었고 환경과 문화의 전문적인 지킴이들이 기꺼이 나서주었으며 최고의 기술진과 첨단 장비의 역량이 여기에 보태졌다 보라 죽었던 청계천에 푸르고 맑은 물이 살아 돌아와 우리의 살림터를 쓰다듬어 적셔 주고 있다 물은 생명의 높은 자리를 다 쓰다듬고 낮고 그늘진 자리를 다 채위 품으니 말할 것도 없이 생명의 영원한 모태이다 오늘 청계천에 흐르는 푸른 물은 우리의 수도 서울이 환경 문화 현대적 안락함이 한데 어우러진 생명 중심 사람 중심의 도시로 탈바꿈하는 역사적 상징이자 그 발화점이
될 것이다 아올러 이 청계천 푸른 물의 상그로운 파장이 서올 중심에 머물지 않고 조국의 먼 변방까지 또 세계 속으로 유유히 홀러 나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05년 10월 1일 ~글 박범신 ~글씨 정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