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outh Korea
time : Aug 21, 2025 3:07 PM
duration : 1h 42m 32s
distance : 1.3 km
total_ascent : 22 m
highest_point : 71 m
avg_speed : 2.9 km/h
user_id : bhsk52441
user_firstname : 신승관
user_lastname : 신
■ 이윤탁한글영비(靈碑)
- 보물제1524호
조선 중기 문신 이문건이 부친 이윤탁의 묘를 모친인 신씨의 묘와 합장하면서 1536년 묘에
세운 한글 묘비이다. 묘비의 앞면과 뒷면에는 각각 묘주의 이름과 그 일대기가 새겨져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는 한글과 한문으로 경계문이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의 왼쪽 면에 새겨있는 한글 경고문은 우리나라 비문으로서 한글로 쓰인 최초의 비문으로 알려져 있다.
*묘비의 왼쪽에는 한자로 ‘영비(靈碑)’라 쓰여
있고 아래에 한글 비문이 두 줄로 새겨져있다. “녕ᄒᆞᆫ 비라 거운 사ᄅᆞᄆᆞᆫ ᄌᆡ화ᄅᆞᆯ 니브리라/ 이ᄂᆞᆫ 글모ᄅᆞᄂᆞᆫ 사ᄅᆞᆷᄃᆞ려 알위노라” 풀어보면 “신령한 비석이므로 훼손하는 사람은 재화를 입으리라. 이를 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알리 노라.”라는 뜻이다. 묘비의 오른쪽에도 한자로
‘不忍碣(불인갈)’이라 새긴 글자 밑에 두 줄로
비슷한 내용의 경고문이 적혀 있다. “爲父母立此 誰無父母 何忍毁之 石不忍犯 則墓不忍凌 明矣 萬世之下可知 免夫(위부모입차 수무부모 하인훼지 석불인범 칙묘불인능 명의 만세지하가지 면부)” 이는
“부모를 위해 이것을 세우는 것이니 누구인들 부모가 없겠으며 어찌 차마 이것을 훼손시키
겠는가. 비석을 차마 범하지 못한다면 묘도 차마 능멸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만세의 후인
들은 이를 알아야 하니 힘쓸지어다.”란뜻이다.
*세종대왕이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했지만 조선시대에 한글로 비석을 새기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한글 비석은 현재 3점이 남아있다.
■ 은행마을 은행나무(보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