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이틀째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새벽 4시가 조금 넘어서 상수 형님이 일어나서 아침밥 준비를 하였다. 나는 잠이 깬 듯 만 듯 여전히 잠자리를 붙들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젯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상수 형님이 에어컨을 끄는 바람에 몸이 몹시 더웠고, 할 수 없이 일어나 찬물을 끼얹고 에어컨을 몰래 틀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집에서처럼 유튜브 방송을 들으면서 잤는데 넓은 침대 위를 이리저리 뒹굴면서 차가운 곳을 골라 다녔다. 아침에 일어나니 상수 형님은 너무 추워서 바람이 불지 않는 에어컨 밑 쪽에 누워서 간신히 주무셨다고 하신다.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편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우리 모두 상수 형님 표 대구탕 솜씨에 감탄하며 아침밥 한 그릇씩 금방 해치워 버렸다. 그리고는 남은 밥과 과일 등을 챙겨서 점심에 먹기로 하였다. 원래 오늘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한시길)을 가기로 하였고, 국립공원에도 그렇게 신고하여 허가를 받았으나, 간밤에 우리는 긴급 코스 변경을 결정하였다. 한시길은 너무 쉽고 한섭 님도 한 번 가본 곳이라고 하여 다른 곳에 가자고 하였고, 상수 형님이 추천하는 대로 따르기로 하였다. 그렇게 해서 정해진 곳이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였다. 얼마전 상수 형님이 권오신 님 술람미 님과 함께 다녀온 곳이라며 어프로우치도 짧고 산행 시간도 길지 않으니 오늘처럼 피곤한 날에는 적격이라고 강력 추천하였다. 한시길 대신 몽유도원도 몽유도원도는 장수대에서 출발한다. 속초에서 가려면 한계령을 넘어가면 되지만 우리는 울산바위를 보고 싶다면서 미시령 옛길을 넘어가자고 하였다. 한섭 님은 무조건 좋다고 한다. 구불구불 굽이진 길을 달린다. 그리고 울산바위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조망처에서 울산바위와 달마봉의 멋진 풍경을 감탄하였다. 그리고 바람이 거세게 부는 미시령에 도착하여 잠시 차를 세워놓고 해 뜨는 속초시를 구경하였다. 미시령 휴게소는 옛 건물을 헐고 새로 지었으나 사업성이 없어서 그런 건지 허가 문제인지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지금 있는 이 미시령 휴게소는 미시령 탐방안내소로 등록되어 있는데, 주소지는 고성군에 속해 있다. 2006년 7월 1일 미시령 터널이 개통되기 전에는 차량 통행이 많아서 휴게소도 영업이 잘 되었지만, 터널이 뚫린 뒤에는 휴게소 뿐만 아니라 도로를 유지 보수하고 겨울철에 제설작업을 하는 것 등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인제군과 고성군이 이 도로를 유지하는 일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상수 형님은 40년 만에 미시령을 찾아왔다면서 감회가 새롭다고 하신다. 길 가에 무성하게 자란 개똥쑥과 개쑥부쟁이 꽃 그리고 그 쑥대밭 속에 곱게 자란 각시취와 마타리 꽃을 서둘러 사진에 담았다. 바람에 빗방울이 섞여서 날린다. 용대리로 내려가는 길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펼쳐지더니 점점 빗방울이 굵어진다. 백두대간 높은 고개를 기준으로 서쪽에는 비가 내리고 동쪽에는 건조한 특이한 기상 현상을 몸소 체험하는 날이다. 다시 원래의 계획대로 한시길로 우리는 다시 고민하였다. 이런 빗속에 몽유도원도 리지 산행을 한다는 것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산행이 불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일기예보에는 전국적으로 약 100 mm 의 비가 내릴 것이며, 강릉에만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항간에는 그 지역 국회의원인 권성동 의원에게 저주가 내린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비가 내리지 않는 지역은 강릉, 양양, 속초, 고성 등 백두대간 동쪽에 있는 지역 대부분이다. 짧은 고심 끝에 우리는 다시 원래 계획했던 대로 한시길을 걷기로 하였다. 하늘이 부리는 변덕에 따라 우리 마음도 이리저리 흔들린다. 차를 설악동 소공원 주차장에 세워두고 다시 쌍천 비룡교를 건넌다. 작은 둔덕을 넘어 소토왕골에 이르러 잠시 숨을 돌리고 땅이 연약해진 탐방로를 따라 오르자 잠시 후 바위가 나타난다. 몇 년 전 소토왕골에 가려다가 길이 헷갈려서 멋도 모른 채 올랐던 길이다. 그때는 소산 형님과 설산 님과 함께 셋이서 어둠이 가시기 전 이른 새벽에 이 바위를 올라 멀리 올라갔었다. 두 사람이 쉬는 동안 피아노 바위까지 갔다가 왔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 행동이었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거의 6 피치를 올라갔다가 길이 잘 못된 것임을 깨닫고 뒤돌아 하산하는 중에 로프를 깔고 올라가는 리지꾼들을 만났고, 그 때서야 비로소 이 길이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가진 리지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상수 형님의 걱정스러운 눈 빛을 감내하며 자일을 깔지 않은 채 바위를 밟았다. 그렇게 두 피치 정도 진행한 다음 좀 까다로운 바위를 만났고, 한섭 님이 선등하여 자일을 깔았다. 한 피치 두 피치 진행할 때마다 눈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에 우리는 탄성을 지른다. 멀리 울산바위는 새벽에 반대편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비치고, 그 앞에 소나무 숲 속에 둘러싸인 달마봉은 백범이 포효하는 형상 그대로이다. 가까이 권금성에서는 케이블카 정거장에서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위에는 한시길의 끝인 노적봉이 우뚝 서 있고 왼편에는 이름 모를 암릉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이 리지 길을 개척한 경원대학교 김 기섭 님은 시인이었다고 한다. 이 암릉을 오르면서 시인은 저 눈 앞에 펼쳐진 푸른 동해바다와 바람이 생기고 나서 처음으로 찾아온 감회를 노래하였다. 지금은 그 시인이 느꼈던 그 감정이 우리 가슴 속에 다가와 앉는다. 이 바위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아니,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생겨나 있었다. 그리고 그 바위 위에서는 소나무와 잣나무와 노간주나무 그리고 참나무들이 바위에 묻은 물기를 훔쳐 마시며 살아왔었다. 나무는 바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살다가 죽고 또 다른 씨앗이 대를 이어 자라났다. 바위와 나무는 한 몸이 되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또 서로 자리를 보전하려고 싸웠다. 바위가 무너지고 나무가 쓰러졌다. 그렇게 세월도 따라 흘렀다. 우리는 지금 태고적부터 나무와 바위와 바람이 살아왔던 그 시간의 나이테 위에 앉아 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가랑비가 간간히 내린다. 빗방울이 굵어지면 중단하고 하산할까 고민하다가 다시 그치면 언제 그랬냔 듯이 바위길을 걷는다. 그러다가 노적봉 밑자락에서 시작되는 8 피치에 이르렀을 때 우리의 산행이 멈추었다. 우리 앞에 10여 명의 한 팀이 바위를 오르고 있었고, 그 중 서너 명이 맨 뒤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앞서 올라간 사람들과 장거리 통신 수단인 워키토키로 교신한다. 앞에서 선등자가 자일을 다 깔아 놓았는데도 중간자를 매고 오르는 사람이 없고 앞사람이 한 피치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다음 사람이 오르다 보니 진행이 매우 더딜 수밖에 없다. 오랜 기다림 끝에 하산을 우리는 물을 마시고 쉬다 보면 차례가 오겠지 하고 기다렸다. 비가 내리다가 그치고 발 아래 설악산 소공원 위에 아름다운 일곱색깔 무지개가 뜬다. 고구마를 먹으면서 휴식을 이어간다. 그러다 조바심이 나는지 상수 형님은 우회로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섭 님에게 올라가 보라고 하신다. 한섭 님이 우회로를 찾고자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바위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던 내 배낭이 넘어지더니 풀쩍 아래로 떨어지고 이어서 데굴데굴 절벽 아래로 한없이 굴러 내려간다. 저게 배낭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고 잠시 허튼 생각을 하였다. 절벽을 내려가 보니 배낭 커버가 찢어지고 안에 들어 있던 물통이 밖으로 삐져 나와 있다. 안에 들어 있던 포도가 락앤락 통 안에서 으깨졌음을 나중에 알았다. 앞 팀은 여전히 진행이 안되고 있었다. 이 한시길은 다른 리지 길에 비해 쉽기 때문에 초보자들이 즐겨 찾아오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진행이 한없이 더딜 수밖에 없고 뒤 팀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다시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상수 형님은 돌아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 우리는 좌측으로 돌았다. 나무와 풀이 듬성듬성 나 있는 비탈길을 걸었다. 여전히 한섭 님이 선등하여 자일을 깔고 우리는 팔자 좋게 8자 매듭을 묶고 안전하게 뒤를 따랐다. 그렇게 노적봉 아래 안부에 도착하였다.

Hiking/Backpacking

Sokcho-si, Gangwon State, South Korea
bethewise photo
time : Sep 6, 2025 8:09 AM
duration : 7h 29m 56s
distance : 4.9 km
total_ascent : 369 m
highest_point : 661 m
avg_speed : 0.9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새벽 4시가 조금 넘어서 상수 형님이 일어나서 아침밥 준비를 하였다. 나는 잠이 깬 듯 만 듯 여전히 잠자리를 붙들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젯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상수 형님이 에어컨을 끄는 바람에 몸이 몹시 더웠고, 할 수 없이 일어나 찬물을 끼얹고 에어컨을 몰래 틀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집에서처럼 유튜브 방송을 들으면서 잤는데 넓은 침대 위를 이리저리 뒹굴면서 차가운 곳을 골라 다녔다. 아침에 일어나니 상수 형님은 너무 추워서 바람이 불지 않는 에어컨 밑 쪽에 누워서 간신히 주무셨다고 하신다.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편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우리 모두 상수 형님 표 대구탕 솜씨에 감탄하며 아침밥 한 그릇씩 금방 해치워 버렸다. 그리고는 남은 밥과 과일 등을 챙겨서 점심에 먹기로 하였다. 원래 오늘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한시길)을 가기로 하였고, 국립공원에도 그렇게 신고하여 허가를 받았으나, 간밤에 우리는 긴급 코스 변경을 결정하였다. 한시길은 너무 쉽고 한섭 님도 한 번 가본 곳이라고 하여 다른 곳에 가자고 하였고, 상수 형님이 추천하는 대로 따르기로 하였다. 그렇게 해서 정해진 곳이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였다. 얼마전 상수 형님이 권오신 님 술람미 님과 함께 다녀온 곳이라며 어프로우치도 짧고 산행 시간도 길지 않으니 오늘처럼 피곤한 날에는 적격이라고 강력 추천하였다. 한시길 대신 몽유도원도 몽유도원도는 장수대에서 출발한다. 속초에서 가려면 한계령을 넘어가면 되지만 우리는 울산바위를 보고 싶다면서 미시령 옛길을 넘어가자고 하였다. 한섭 님은 무조건 좋다고 한다. 구불구불 굽이진 길을 달린다. 그리고 울산바위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조망처에서 울산바위와 달마봉의 멋진 풍경을 감탄하였다. 그리고 바람이 거세게 부는 미시령에 도착하여 잠시 차를 세워놓고 해 뜨는 속초시를 구경하였다. 미시령 휴게소는 옛 건물을 헐고 새로 지었으나 사업성이 없어서 그런 건지 허가 문제인지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지금 있는 이 미시령 휴게소는 미시령 탐방안내소로 등록되어 있는데, 주소지는 고성군에 속해 있다. 2006년 7월 1일 미시령 터널이 개통되기 전에는 차량 통행이 많아서 휴게소도 영업이 잘 되었지만, 터널이 뚫린 뒤에는 휴게소 뿐만 아니라 도로를 유지 보수하고 겨울철에 제설작업을 하는 것 등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인제군과 고성군이 이 도로를 유지하는 일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상수 형님은 40년 만에 미시령을 찾아왔다면서 감회가 새롭다고 하신다. 길 가에 무성하게 자란 개똥쑥과 개쑥부쟁이 꽃 그리고 그 쑥대밭 속에 곱게 자란 각시취와 마타리 꽃을 서둘러 사진에 담았다. 바람에 빗방울이 섞여서 날린다. 용대리로 내려가는 길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펼쳐지더니 점점 빗방울이 굵어진다. 백두대간 높은 고개를 기준으로 서쪽에는 비가 내리고 동쪽에는 건조한 특이한 기상 현상을 몸소 체험하는 날이다. 다시 원래의 계획대로 한시길로 우리는 다시 고민하였다. 이런 빗속에 몽유도원도 리지 산행을 한다는 것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산행이 불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일기예보에는 전국적으로 약 100 mm 의 비가 내릴 것이며, 강릉에만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항간에는 그 지역 국회의원인 권성동 의원에게 저주가 내린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비가 내리지 않는 지역은 강릉, 양양, 속초, 고성 등 백두대간 동쪽에 있는 지역 대부분이다. 짧은 고심 끝에 우리는 다시 원래 계획했던 대로 한시길을 걷기로 하였다. 하늘이 부리는 변덕에 따라 우리 마음도 이리저리 흔들린다. 차를 설악동 소공원 주차장에 세워두고 다시 쌍천 비룡교를 건넌다. 작은 둔덕을 넘어 소토왕골에 이르러 잠시 숨을 돌리고 땅이 연약해진 탐방로를 따라 오르자 잠시 후 바위가 나타난다. 몇 년 전 소토왕골에 가려다가 길이 헷갈려서 멋도 모른 채 올랐던 길이다. 그때는 소산 형님과 설산 님과 함께 셋이서 어둠이 가시기 전 이른 새벽에 이 바위를 올라 멀리 올라갔었다. 두 사람이 쉬는 동안 피아노 바위까지 갔다가 왔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 행동이었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거의 6 피치를 올라갔다가 길이 잘 못된 것임을 깨닫고 뒤돌아 하산하는 중에 로프를 깔고 올라가는 리지꾼들을 만났고, 그 때서야 비로소 이 길이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가진 리지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상수 형님의 걱정스러운 눈 빛을 감내하며 자일을 깔지 않은 채 바위를 밟았다. 그렇게 두 피치 정도 진행한 다음 좀 까다로운 바위를 만났고, 한섭 님이 선등하여 자일을 깔았다. 한 피치 두 피치 진행할 때마다 눈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에 우리는 탄성을 지른다. 멀리 울산바위는 새벽에 반대편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비치고, 그 앞에 소나무 숲 속에 둘러싸인 달마봉은 백범이 포효하는 형상 그대로이다. 가까이 권금성에서는 케이블카 정거장에서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위에는 한시길의 끝인 노적봉이 우뚝 서 있고 왼편에는 이름 모를 암릉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이 리지 길을 개척한 경원대학교 김 기섭 님은 시인이었다고 한다. 이 암릉을 오르면서 시인은 저 눈 앞에 펼쳐진 푸른 동해바다와 바람이 생기고 나서 처음으로 찾아온 감회를 노래하였다. 지금은 그 시인이 느꼈던 그 감정이 우리 가슴 속에 다가와 앉는다. 이 바위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아니,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생겨나 있었다. 그리고 그 바위 위에서는 소나무와 잣나무와 노간주나무 그리고 참나무들이 바위에 묻은 물기를 훔쳐 마시며 살아왔었다. 나무는 바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살다가 죽고 또 다른 씨앗이 대를 이어 자라났다. 바위와 나무는 한 몸이 되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또 서로 자리를 보전하려고 싸웠다. 바위가 무너지고 나무가 쓰러졌다. 그렇게 세월도 따라 흘렀다. 우리는 지금 태고적부터 나무와 바위와 바람이 살아왔던 그 시간의 나이테 위에 앉아 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가랑비가 간간히 내린다. 빗방울이 굵어지면 중단하고 하산할까 고민하다가 다시 그치면 언제 그랬냔 듯이 바위길을 걷는다. 그러다가 노적봉 밑자락에서 시작되는 8 피치에 이르렀을 때 우리의 산행이 멈추었다. 우리 앞에 10여 명의 한 팀이 바위를 오르고 있었고, 그 중 서너 명이 맨 뒤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앞서 올라간 사람들과 장거리 통신 수단인 워키토키로 교신한다. 앞에서 선등자가 자일을 다 깔아 놓았는데도 중간자를 매고 오르는 사람이 없고 앞사람이 한 피치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다음 사람이 오르다 보니 진행이 매우 더딜 수밖에 없다. 오랜 기다림 끝에 하산을 우리는 물을 마시고 쉬다 보면 차례가 오겠지 하고 기다렸다. 비가 내리다가 그치고 발 아래 설악산 소공원 위에 아름다운 일곱색깔 무지개가 뜬다. 고구마를 먹으면서 휴식을 이어간다. 그러다 조바심이 나는지 상수 형님은 우회로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섭 님에게 올라가 보라고 하신다. 한섭 님이 우회로를 찾고자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바위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던 내 배낭이 넘어지더니 풀쩍 아래로 떨어지고 이어서 데굴데굴 절벽 아래로 한없이 굴러 내려간다. 저게 배낭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고 잠시 허튼 생각을 하였다. 절벽을 내려가 보니 배낭 커버가 찢어지고 안에 들어 있던 물통이 밖으로 삐져 나와 있다. 안에 들어 있던 포도가 락앤락 통 안에서 으깨졌음을 나중에 알았다. 앞 팀은 여전히 진행이 안되고 있었다. 이 한시길은 다른 리지 길에 비해 쉽기 때문에 초보자들이 즐겨 찾아오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진행이 한없이 더딜 수밖에 없고 뒤 팀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다시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상수 형님은 돌아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 우리는 좌측으로 돌았다. 나무와 풀이 듬성듬성 나 있는 비탈길을 걸었다. 여전히 한섭 님이 선등하여 자일을 깔고 우리는 팔자 좋게 8자 매듭을 묶고 안전하게 뒤를 따랐다. 그렇게 노적봉 아래 안부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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