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yeongchang-gun, Gangwon State, South Korea
time : Mar 22, 2025 8:57 AM
duration : 7h 48m 43s
distance : 7 km
total_ascent : 549 m
highest_point : 555 m
avg_speed : 1.5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문희마을 동강 가에 있는 바위벽에 군락을 이뤄 자라는 동강할미꽃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벌써 많이 와 있다. 그들이 하는 말 소리를 들어보면 전국에서 다 모였다. 서울이나 경기도는 그나마 가까운 축에 든다. 경상도 사투리도 많이 섞여 있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사람들이 바위 아래에서 핸드폰을 높이 쳐들고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아 ! 피었다. 활짝 핀 것은 아니지만 벌써 꽃대를 높이 올리고 그 끝에 할미꽃 꽃봉오리가 입을 살짝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파란 하늘 색이다. 입 속의 노란 꽃밥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른다.
그래도 뭔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바위 틈에 한 무더기가 활짝 피어 있다. 작년에 무성하게 자랐던 잎은 바짝 마른 채 꽃 아래 늘어져 있고, 올 해 새로 돋아나는 잎은 아직 꽃 속에 숨어 있다. 동강할미꽃은 잎보다 먼저 피어난다. 그러니 작년에 비축해 두었던 에너지를 몸에 가득 안고 있다가 따뜻한 햇볕이 비추자마자 더 이상 망설임 없이 꽃대를 살짝 올리고 꽃 입을 벌린다. 그렇게 수정을 하고 나면 잎이 돋아나고 태양 에너지를 모아서 씨를 영글게 한 다음 내년에 또 꽃을 피울 에너지를 만들어서 뿌리에 저장해 두는 것이다.
바위를 먹고 자라는 것은 소나무 만이 아니다. 동강할미꽃도 분명 소나무에게서 배웠을 것 같다.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로 바위를 녹여 에너지를 만드는 기술을 스스로 터득했을 지도 모른다. 동강할미꽃은 바위가 없으면 자랄 수도 없는 모양이다.
아직 찬 바람이 강물 위를 서성일 때 남들보다 일찍 피어나야 할 운명을 타고 났기에, 동강할미꽃은 흰 솜털이 보송보송 나 있는 털옷을 입고 나온다. 그 몸속에 흐르는 수액도 부명 찬 기운에도 얼지 않는 부동액으로 채워졌을 터이다. 이렇게 부지런한 동강할미꽃은 올해도 어김없이 제 때 모습을 보였다.
칠족령
제장마을과 문희마을의 중간 능선위에 위치한 칠족령으로 향한다. 백운산 가파른 비탈을 따라 옛날 조상들이 다녔던 발자국이 모여서 생겨난 산길을 따라 걷는다. 몇 번 다녀간 길이라 익숙한 눈길이 전에 보았던 나무들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생강나무 꽃망울이 터질 듯 말 듯 부풀어 있고, 올괴불나무 꽃은 겨우 한 두 송이 피어 있다. 역시 예년에 비해 올해는 봄의 발걸음이 조금 느린 것 같다.
시베리아 살구나무도 아는 척해보고, 맛이 쓰디 쓴 소태나무 찾는 것은 포기했다. 코르크가 두툼한 굴참나무가 신갈나무만큼 많이 보이고, 층층나무와 물푸레나무도 함께 어울려 한 가족을 이룬다. 분꽃나무 꽃눈을 보며 그 향기를 상상으로 느끼며 완만하게 이어지는 호젓한 산길을 걷는다.
산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하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내려오는 노인을 만났다. 진돗개냐고 물으니 풍산개라고 한다. 단단한 목줄을 했는데도 꼬리를 바짝 올린 채 경계심을 품고 주인과 객의 관계를 살펴본다. 노인은 올해 날이 가물어서 고로쇠 물이 적어서 오늘 처음으로 채취해 오는 것이라며 배낭에 고로쇠물이 들어 있다고 한다. ‘찬’이라 부르는 풍산개는 주인이 말 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내가 한마디 하면 일어나서 입 속으로 ‘구루루’하고 웅얼거리다가 주인이 앉으라고 하면 엉덩이를 땅에 붙인다. 참 똑똑한 놈이다.
고갯길 중간에 있는 돌탑 주변에서 노루귀를 찾아보았다. 전에 이곳저곳 많이 피어 있던 기억을 더듬으며 땅을 유심히 살펴보지만 ‘나 여기 있소’ 하고 손들고 나올 리도 없는 일이다. 내 시력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 가랑잎을 살짝 헤치며 찾아보지만 여전히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함께 오르던 눈 좋은 사람들이 겨우 몇 포기 찾아냈지만, 그 모양이 정말 갓 어미 뱃속에서 나온 노루새끼처럼 흰 털을 뒤집어쓴 콩나물 같다. 청노루귀 꽃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컸던 만큼 큰 실망으로 가슴을 채우고, 이따가 산을 내려올 때는 분명히 더 피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수피가 거칠게 일어난 나무를 보며 그 이름을 찾아내려고 머리를 빠른 속도로 회전시켜 보지만 영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음나무 껍질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나고, 정말 전에 꼭 이와 닮은 나무를 본 적이 있다는 기억이 떠오르지만 그 이름은 허공을 맴돌 뿐이다. 그러다가 전에 명지산에 오르다가 보았던 그 나무가 기억났다. 헛개나무. 정말 수피가 그 나무와 비슷한데, 정말 그 나무일까 하는 생각에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늘벽 구름다리 청노루귀
함박눈이 내리고 영하 2~3도까지 내려가던 쌀쌀했던 날이 불과 1주일 전이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은 듯 오늘은 완연한 봄 날씨다. 셔츠 하나만 입어도 땀이 날 정도다. 햇볕이 이리 좋으니 꽃이 피고 날벌레들도 제세상을 만난 듯 천방지축 날아다닌다.
전망대에서 멋진 동강 물줄기를 감상하고 하늘벽 구름다리로 향했다. 왼편은 그야말로 천길 낭떠러지, 이곳 정선에서 뼝대라고 부르는 절벽이고 오른편은 경사가 급하지만 그래도 흙이 쌓여 있고 나무들이 자라는 산비탈이다. 석회암 능선을 따라 걷는데 가끔 우람한 소나무들이 절벽쪽으로 몸통을 드리운 채 아슬아슬하게 누워있다. 뼝대에 자라는 동강할미꽃을 탐색하면서 걷는다.
이 길에는 사람 발길이 자주 닿지 않으니 귀한 야생화가 많이 자란다. 진달래는 아직 너무 이르고, 동강할미꽃은 가끔 보인다. 말라서 땅에 흐트러진 고수 풀 줄기와 역시 말라있는 삽주 꽃도 보인다. 설악산에서 많이 보았던 털댕강나무도 제법 큰 것이 보인다.
그리고 갑자기 눈에 노루귀가 들어온다. 여기 쯤 한 두 송이 피어 있을 거라고 기대를 했지만 막상 이렇게 여러 포기 노루귀가 길 가에 피어 있으니 반가움에 환호성이 나온다. 짐작컨데 이 노루귀들도 방금 따뜻한 봄볕을 받고 잠에서 막 깨어나는 것일 게다. 가느다란 꽃대와 노루귀처럼 생긴 꽃받침에 흰색 털이 보송보송 나 있다. 꽃이라는 것은 다 신기하지만 특히 이 노루귀의 모양이나 색깔은 더욱 아름답기 짝이 없다. 내 코가 둔하여 향기는 맡지 못하지만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강렬한 향이 피어오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