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yangju-si, Gyeonggi, South Korea
time : Mar 18, 2025 9:36 AM
duration : 8h 40m 15s
distance : 16.6 km
total_ascent : 1032 m
highest_point : 626 m
avg_speed : 2.2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코스 : 운길산 역 – 세정사 – 임도 – 적갑산 – 운길산 – 수종사 – 운길산 역
바야흐로 봄꽃이 막 피어나려고 아우성치는 이 시기에 난데없이 눈이 내린다. 엊그제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더니 이렇게 함박눈이 쏟아지니 가슴이 뛰고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재빠르게 산행 준비를 했다. 점심 밥에 김치 조금 그리고 과일을 조금 싸고, 커피 두 병을 넣고 지하철 역으로 가면서 파리바게트에 들러 맛있는 빵을 사서 배낭에 넣었다.
기온은 0 도 위 아래를 맴도는지 아스팔트 위에 떨어지는 눈 송이는 금방 녹아버리고, 나무 위에 쌓은 눈 위에 내리는 눈은 그대로 무게를 더한다. 공원의 소나무들은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버티기에 들어간 양상이다. 작은 떨기나무들은 꽃 대신 눈 꽃을 달고 있다.
하느님이 새로운 견습 직원을 채용했다. 사막에 비를 내리게 하는 법, 초원에 모래 바람을 일으키는 법 등 극한 상황 연출 기술을 어느 정도 익히고 나니, 은근히 그 기술을 활용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하느님에게 몇 번 말씀 드렸으나, 그는 매우 바쁜지 혼자서 일을 다 하려고 하신다.
“저, 하느님. 이번에 내년을 대비하여 눈 만드는 실습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에게 또 간청을 드리니 하느님은
“야,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니? 무엇보다 마음이 섬세해 져야 하고 손도 빨라야 하는데 네가 그걸 감당할 수 있겠어? 하고 또 거부할 태세다.
그래도 조심해서 시연하겠다고 약속을 하니 마지못해 하느님이 허락을 하신다.
우선 시베리아에 대기중인 찬바람을 들어다 한반도 위에 살짝 펼쳐 놓았다. 그 기운이 옆으로 새지 않도록 조심하였지만 손이 조금 떨려서 중국과 일본까지 찬 기운이 흩어졌다. 그리고 나서 태평양에 있는 물을 조금 데워서 주머니에 담아 찬 공기 아래에 뿌렸다. 정말, 아주 조금만 뿌려서 눈이 내리는 듯 아닌 듯 흉내만 내볼 참이었는데, 갑자기 열린 주머니에서 꽤 많은 양의 물이 쏟아졌다. 서둘러 주머니를 닫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한반도에서는 봄에 눈 폭탄이 터졌다고 난리다. 하느님께서는 거 보라며 혀를 차신다.
세정사(世淨寺)
운길산 역에서 세정사에 이르는 길에는 염화칼슘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눈이 다 녹아 있다. 하지만 그 양 옆 숲 속은 한겨울 설경에 비유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펼쳐 보인다. 세정사에도 그 계곡에도 아직 아무도 다닌 흔적이 없다. 눈은 발목을 덮을 정도로 그다지 많이 내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골고루 땅을 덮은 눈으로 인해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들은 눈 속에 숨어버렸다. 은근히 설상화(雪上花)의 신기한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그 욕심이 지나쳤음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늘은 오롯이 눈 길을 걷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였다.
능선으로 오르는 임도를 걷고 있는데 또 눈이 내린다. 바닥에 쌓인 눈은 그대로도 많은데 그 위에 더 쌓이니 봄 눈 치고는 대단한 양이다. 임도와 능선 사이 짧은 구간, 지도상에는 길 표시가 되어 있지만 실제로 길은 나 있지 않은 급경사 구간이다. 나무를 붙잡고 작은 나뭇가지를 헤치며 능선에 올라섰다.
능선길에는 많은 나무들이 쓰러져 있다. 어떤 것은 굵은 몸체가 비틀려 꺾어져 있고 어떤 것은 굵은 가지가 꺾어져 땅에 떨어져 있다. 대부분 소나무들이다. 소나무는 나무 자체도 단단하지 못한데다 푸른 잎이 촘촘하게 나 있으니 그 무거운 눈이 층층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적갑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으며 잠시 생각하였다. 여기서 도심역쪽으로 내려가는 것은 가장 짧은 길이다. 아니면 조금 더 내려가 새재고개에서 운길산 역쪽으로 하산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간간이 눈이 내려 조망도 그다지 안 좋은데 운길산에 오르는 것은 무의미해 보였다.
적갑산(560 m)
식사를 마치고 배낭을 뒤져보니 아이젠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번 천마산 산행 때는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소백산 산행 때 아이젠 한 쪽을 잃어버리고 나서 새로 주문한 아이젠을 아직 한 번도 착용하지 않았다. 그걸 배낭에 넣어두는 걸 깜빡한 모양이다. 배낭에서 쉬고 있는 스틱을 꺼냈다.
눈은 부드럽지만 그 아래에 숨어 있는 낙엽과 돌과 나무뿌리가 돌발 사태를 일으킨다. 처음 넘어질 때는 내가 조심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려니 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하였다. 엉덩이에 묻은 눈을 훌훌 털고 일어났다. 두 번째 넘어지고 나니 조금 더 경각심이 일어났다.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연거푸 넘어지니 은근히 겁도 났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이다. 얼마전 부천의 낮은 산에서 떨어진 핸드폰을 주우려다 절벽으로 떨어져서 정신을 잃었다가 그 다음날 구조되었다는 뉴스가 머리에 떠올랐다. 불행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새재고개 갈림길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운길산 정상까지 3 km도 채 되지 않는다. 물론 그 짧은 구간에 작은 봉우리 서너 개를 넘어야 한다. 정상 방향으로 몇 명이 지나간 흔적이 나 있다. 오후 2시 30분이 조금 지났다. 시간도 넉넉할 것 같다. 조심하면서 걷기로 하고 운길산 정상으로 향했다.
눈이 그치니 시야가 트이기 시작한다. 오른쪽으로 나무 숲 사이에 예봉산이 보이고 왼편으로 가까이 갑산(甲山)이 보인다. 그리고 아직 가보지 못한 고래산이 그 오른편에 높이 서 있고 더 멀리 엊그제 다녀온 천마산이 우뚝 솟아 있다. 주금산-철마산-천마산-백봉산-갑산-예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천마지맥이라고 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적설량이 더 많아지는 느낌이다. 내리막 돌길에는 특히 주의를 하면서 걸으니 더 이상 넘어지지는 않았다. 마른 나뭇가지에 벌레를 잡아먹으려는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가 경쾌하다. 사람 손보다도 더 작은 새가 나무를 파는 소리는 큰 새가 내는 소리보다도 더 크다. 더구나 절에서 스님이 염불을 마칠 때 두드리는 목탁소리처럼 또로로로 하고 내는 소리같이 들리는 쇠딱따구리 소리는 정말 신기하기 그지없다.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 자세히 보려 해도 새의 크기가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운길산(雲吉山 610 m)
구름이 흘러가다가 산 봉우리에 걸려 머문다고 하여 이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금강산에서 발원(發源)하여 화천 춘천을 거쳐 371 km 를 내달려온 북한강과 대덕산에서 발원하여 영월 충주를 거쳐 흘러 내려온 남한강이 합쳐지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그 의미가 더해지는 산이다. 물이 가까이 있으니 수시로 안개가 피어올라 구름이 되어 산 허리를 감싸니 그 아름다움은 더할 나위 없을 터이다.
오후 4시 조금 지나서 운길산 정상에 도착했다. 넓은 데크에 두텁게 쌓여 있는 눈 위에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두물머리와 그 건너편에 있는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해는 아직 산 마루 위에 높이 떠 있다. 벤치에 앉아 남은 빵을 마저 먹으면서 여유를 가졌다. 천마산에서 백봉산을 넘어 갑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수종사(水鐘寺)
능선길을 걸어 수종사 뒤편에 있는 절상봉을 잠깐 들렀다가 수종사를 거쳐 하산하였다.
수종사는 참 재미있는 창건 설화를 갖고 있는 절이다. 즉, 세조가 금강산에 다녀오는 도중 양수리에서 하루 묵어가게 되었는데 새벽에 멀리서 종소리가 들려 잠이 깬 후 신하들을 시켜 그 종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 보라 하였더니, 신하들이 돌아와 산중에 작은 굴이 있는데 굴 위에서 물이 떨어져 울리는 소리라 아뢰었다. 그 굴에는 18 나한상이 모셔져 있기에 세조는 팔도방백에 명령하여 이 절의 중창을 맡기고 절의 이름을 수종사(水鐘寺)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수종사 절을 둘러보고 산을 내려와 올려다보니 예봉산 위로 해가 지고 있다. 초봄의 하늘이 찬란하게 불타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