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선자령 눈산행

선자령은 그동안 몇 차례 다녀온 곳이다. 집사람과 겨울 눈을 보겠다고 자동차를 타고 갔었고, 고인돌 형님과 진고개에서 대관령까지 종주 산행도 두 번 했고, 백두대간 뛸 때 다녀왔던 것까지 치면 적어도 네 번은 다녀왔다. 겨울 눈 산행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많은 눈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겨울에는 여기 말고도 눈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으니까 실제로 산행과 연계하여 이 선자령을 찾는 것은 달리 계획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선자령을 이번에 우연히 찾아가게 되었다. 원래는 오대산 산방기간 끝나기 전에 가보겠다고 산악회에 예약을 하였는데, 갑자기 눈이 많이 내려서 간밤에 설악산에 이어 오대산마저 탐방이 통제되었다고 하였다. 고인돌 형님이 그럼 선재길이라도 가자고 하니, 산악회 안내인은 선재길도 통제라고 한다. 이정도 눈이 내렸다고 선재길마저 통제를 한다는 것은 국립공원 직원들의 지나친 자기 위주의 생각이라는 데 모두 동의하지만, 어차피 결정은 그들이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선택권도 없이, 꿩 대신 닭을 잡아야 했다. 이제 국립공원은 이번 눈 덕분에 하루 일찍 산방기간 통제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5월 말이나 되어야 다시 문을 열 것이다. 선자령(仙子嶺) 선녀가 아들을 데리고 내려와 노닐었다는 유래를 갖고 있는 선자령이지만, 지금은 주변에 나무도 없는 거의 벌거숭이 능선길이고, 양떼 목장이 넓게 펼쳐져 있고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풍력발전기가 쉼 없이 돌아가는 소음이 들리는 곳이니 선녀든 신선이든 감히 내려올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옛날 대관령이 뚫리기 전에는 평창과 강릉을 이어주는 유일한 길이었다고 하니, 그 한적한 길에 가끔 선녀가 아들을 데리고 내려와 인간세상을 구경하고 갔음 직도 하다.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의 손을 잡고 넘었을 길이고, 강릉의 어물 장수들이 등짐을 지고 넘었을 길이고, 또 평창에서 여러가지 특산물을 이고지고 이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지금 대관령 (832 미터)에서 시작하여 약 5 km 떨어진 선자령(1157 m)까지 오가는 길은 그다지 힘들지 않은 길이지만, 강릉에서 평창으로 넘어가는 이 고개는 맨몸으로 넘나들기조차 힘든 길이었을 터이다. 옛날에는 고개 양쪽에 짐을 지고 나르는 짐꾼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풍경은 대관령 도로가 뚫리면서 사라진 것 같다. 선자령 길에는 잣나무와 분비나무 그리고 자작나무와 갈잎나무 등 여러가지 나무들을 심어 놓았다. 어떤 것들은 이미 어른 허벅지만큼 굵게 자랐고 어떤 것은 이제 어린 아이 키만큼 자라 눈 속에 묻혀 있다. 앞으로 10년 뒤 그리고 20년 뒤에 이 선자령의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달라질 것이다. 독일의 검은 숲(Schwarzwald)처럼 늘 어두운 그늘 속에 잠겨 있는 그런 명품 숲이 생겨날 것 같다. 그러면 예전에 찾아왔던 선녀가 장성한 아들을 데리고 다시 내려와 놀다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봄이 오는 길 어쩌면 이번 겨울의 마지막 설경(雪景)이 될 지도 모르는 선자령의 눈 풍경을 눈에 담고, 가슴에 담고, 사진에 담고 다시 대관령으로 향한다. 길 가에는 지난번 내린 눈이 녹아 얼음으로 남아 있다. 돌아오는 길은 계곡을 따라 흐른다. 한번 얼었다가 녹은 물 위에 쌓인 눈이 푸르스름하게 녹아 있다. “내가 여기서 제비동자꽃을 보려고 저기 숲 길을 헤매며 다녔었는데…..” 고인돌 형님은 이 야생화가 풍부한 선자령길에 대한 추억을 품고 있다. 길 옆에는 마른 투구꽃 줄기가 눈 속에 묻혀 있다. 양지바른 곳에는 가을날 각시취가 지천으로 피어 있고, 이른 봄에는 앉은뱅이부채 (앉은부처) 꽃도 피는 곳이다. 지금은 제비동자꽃을 비롯하여 많은 야생화들이 수난을 겪고 있지만, 숲이 살아나면 이들 야생화들도 선녀들과 함께 다시 선자령을 토대삼아 번성할 것이다. 성황당 대관령에는 예전부터 국가차원에서 제사를 지내던 성황당이 있다. 대관령 입구에 대관령국사성황당(大關嶺國師城隍堂)이라 쓴 비석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지만 아직 이 성황당을 가보지 못했다. 성황당이라면 옛날 마을 입구에 세운 신전(神殿)이라고 할 수 있는데,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미신 숭배라며 대부분 철폐하여 지금은 그런 성황당이 남아 있는 곳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대관령에 있는 국사 성황당은 지금도 단오때가 되면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성황당 앞 안내문에 따르면 음력 4월 15일 이곳 성황사에서 신맞이 굿을 한 다음 신목인 단풍나무를 베어 들고 강릉으로 행차한다. 이것을 ‘대관령 국사 성황신 행차’라 하며 이 신목을 강릉 시내 홍제동에 있는 ‘대관령 국사 여성황사’에 봉안하였다가, 음력 5월 3일 영신제를 지내고 시내를 도는 영신 행차를 한 후 남대천 단오장 제단에 봉안하고 단오제를 지낸다고 한다. 대관령 국사 성황사는 ‘국사성황사’ 또는 ‘국사당’이라고도 하며 중앙에 전립을 쓰고 백마를 탄 범일국사 화상을 모셨다. 산신각 내부에는 호랑이를 타고 있는 산신 모습을 그린 화상을 모셨다고 한다. 이 성황당까지 자동차가 올라올 수 있을 만큼 길이 넓다. 성황당 주차장에는 자동차 3 대가 주차되어 있으나, 이 차들은 눈이 내리기 전에 올라온 것 같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보니 SUV 차량 한 대가 눈 속에 갇혀 있다. 눈이 너무 많아 차량 통행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탐방객들만 아름다운 설경에 입을 벌린 채 환호를 지르며 왕래한다. 선자령 왕복 약 11 킬로미터를 돌고 다시 아침에 출발했던 대관령으로 돌아왔다. 닭목재에서 고루포기산을 거쳐 능경봉으로 이어지는 산길과 진고개에서 매봉을 거쳐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이 만나는 고개다. 아흔아홉구비 가파른 고개를 데굴데굴 굴러서 내려가야 한다고 하여 데굴령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화(漢字化) 하면서 그 발음에 맞게 대관령(大關嶺)이라 이름 지었다는 재미난 이야기가 바람에 스쳐 날아간다. 대관령 고개에 서면 강릉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 그 너머 시퍼런 동해바다가 넘실거린다. 오늘 오대산에 가려다 생각지도 않게 찾아온 선자령이지만 나는 아주 큰 감명을 받았다. 역시 겨울 눈산행지로 빼어난 곳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여행이었다.

Hiking/Backpacking

Gangneung-si, Gangwon State, South Korea
bethewise photo
time : Mar 3, 2025 9:43 AM
duration : 5h 11m 18s
distance : 11.1 km
total_ascent : 475 m
highest_point : 1168 m
avg_speed : 2.5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선자령은 그동안 몇 차례 다녀온 곳이다. 집사람과 겨울 눈을 보겠다고 자동차를 타고 갔었고, 고인돌 형님과 진고개에서 대관령까지 종주 산행도 두 번 했고, 백두대간 뛸 때 다녀왔던 것까지 치면 적어도 네 번은 다녀왔다. 겨울 눈 산행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많은 눈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겨울에는 여기 말고도 눈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으니까 실제로 산행과 연계하여 이 선자령을 찾는 것은 달리 계획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선자령을 이번에 우연히 찾아가게 되었다. 원래는 오대산 산방기간 끝나기 전에 가보겠다고 산악회에 예약을 하였는데, 갑자기 눈이 많이 내려서 간밤에 설악산에 이어 오대산마저 탐방이 통제되었다고 하였다. 고인돌 형님이 그럼 선재길이라도 가자고 하니, 산악회 안내인은 선재길도 통제라고 한다. 이정도 눈이 내렸다고 선재길마저 통제를 한다는 것은 국립공원 직원들의 지나친 자기 위주의 생각이라는 데 모두 동의하지만, 어차피 결정은 그들이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선택권도 없이, 꿩 대신 닭을 잡아야 했다. 이제 국립공원은 이번 눈 덕분에 하루 일찍 산방기간 통제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5월 말이나 되어야 다시 문을 열 것이다. 선자령(仙子嶺) 선녀가 아들을 데리고 내려와 노닐었다는 유래를 갖고 있는 선자령이지만, 지금은 주변에 나무도 없는 거의 벌거숭이 능선길이고, 양떼 목장이 넓게 펼쳐져 있고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풍력발전기가 쉼 없이 돌아가는 소음이 들리는 곳이니 선녀든 신선이든 감히 내려올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옛날 대관령이 뚫리기 전에는 평창과 강릉을 이어주는 유일한 길이었다고 하니, 그 한적한 길에 가끔 선녀가 아들을 데리고 내려와 인간세상을 구경하고 갔음 직도 하다.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의 손을 잡고 넘었을 길이고, 강릉의 어물 장수들이 등짐을 지고 넘었을 길이고, 또 평창에서 여러가지 특산물을 이고지고 이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지금 대관령 (832 미터)에서 시작하여 약 5 km 떨어진 선자령(1157 m)까지 오가는 길은 그다지 힘들지 않은 길이지만, 강릉에서 평창으로 넘어가는 이 고개는 맨몸으로 넘나들기조차 힘든 길이었을 터이다. 옛날에는 고개 양쪽에 짐을 지고 나르는 짐꾼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풍경은 대관령 도로가 뚫리면서 사라진 것 같다. 선자령 길에는 잣나무와 분비나무 그리고 자작나무와 갈잎나무 등 여러가지 나무들을 심어 놓았다. 어떤 것들은 이미 어른 허벅지만큼 굵게 자랐고 어떤 것은 이제 어린 아이 키만큼 자라 눈 속에 묻혀 있다. 앞으로 10년 뒤 그리고 20년 뒤에 이 선자령의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달라질 것이다. 독일의 검은 숲(Schwarzwald)처럼 늘 어두운 그늘 속에 잠겨 있는 그런 명품 숲이 생겨날 것 같다. 그러면 예전에 찾아왔던 선녀가 장성한 아들을 데리고 다시 내려와 놀다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봄이 오는 길 어쩌면 이번 겨울의 마지막 설경(雪景)이 될 지도 모르는 선자령의 눈 풍경을 눈에 담고, 가슴에 담고, 사진에 담고 다시 대관령으로 향한다. 길 가에는 지난번 내린 눈이 녹아 얼음으로 남아 있다. 돌아오는 길은 계곡을 따라 흐른다. 한번 얼었다가 녹은 물 위에 쌓인 눈이 푸르스름하게 녹아 있다. “내가 여기서 제비동자꽃을 보려고 저기 숲 길을 헤매며 다녔었는데…..” 고인돌 형님은 이 야생화가 풍부한 선자령길에 대한 추억을 품고 있다. 길 옆에는 마른 투구꽃 줄기가 눈 속에 묻혀 있다. 양지바른 곳에는 가을날 각시취가 지천으로 피어 있고, 이른 봄에는 앉은뱅이부채 (앉은부처) 꽃도 피는 곳이다. 지금은 제비동자꽃을 비롯하여 많은 야생화들이 수난을 겪고 있지만, 숲이 살아나면 이들 야생화들도 선녀들과 함께 다시 선자령을 토대삼아 번성할 것이다. 성황당 대관령에는 예전부터 국가차원에서 제사를 지내던 성황당이 있다. 대관령 입구에 대관령국사성황당(大關嶺國師城隍堂)이라 쓴 비석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지만 아직 이 성황당을 가보지 못했다. 성황당이라면 옛날 마을 입구에 세운 신전(神殿)이라고 할 수 있는데,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미신 숭배라며 대부분 철폐하여 지금은 그런 성황당이 남아 있는 곳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대관령에 있는 국사 성황당은 지금도 단오때가 되면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성황당 앞 안내문에 따르면 음력 4월 15일 이곳 성황사에서 신맞이 굿을 한 다음 신목인 단풍나무를 베어 들고 강릉으로 행차한다. 이것을 ‘대관령 국사 성황신 행차’라 하며 이 신목을 강릉 시내 홍제동에 있는 ‘대관령 국사 여성황사’에 봉안하였다가, 음력 5월 3일 영신제를 지내고 시내를 도는 영신 행차를 한 후 남대천 단오장 제단에 봉안하고 단오제를 지낸다고 한다. 대관령 국사 성황사는 ‘국사성황사’ 또는 ‘국사당’이라고도 하며 중앙에 전립을 쓰고 백마를 탄 범일국사 화상을 모셨다. 산신각 내부에는 호랑이를 타고 있는 산신 모습을 그린 화상을 모셨다고 한다. 이 성황당까지 자동차가 올라올 수 있을 만큼 길이 넓다. 성황당 주차장에는 자동차 3 대가 주차되어 있으나, 이 차들은 눈이 내리기 전에 올라온 것 같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보니 SUV 차량 한 대가 눈 속에 갇혀 있다. 눈이 너무 많아 차량 통행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탐방객들만 아름다운 설경에 입을 벌린 채 환호를 지르며 왕래한다. 선자령 왕복 약 11 킬로미터를 돌고 다시 아침에 출발했던 대관령으로 돌아왔다. 닭목재에서 고루포기산을 거쳐 능경봉으로 이어지는 산길과 진고개에서 매봉을 거쳐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이 만나는 고개다. 아흔아홉구비 가파른 고개를 데굴데굴 굴러서 내려가야 한다고 하여 데굴령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화(漢字化) 하면서 그 발음에 맞게 대관령(大關嶺)이라 이름 지었다는 재미난 이야기가 바람에 스쳐 날아간다. 대관령 고개에 서면 강릉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 그 너머 시퍼런 동해바다가 넘실거린다. 오늘 오대산에 가려다 생각지도 않게 찾아온 선자령이지만 나는 아주 큰 감명을 받았다. 역시 겨울 눈산행지로 빼어난 곳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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