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ju-si, Gyeonggi, South Korea
time : Dec 28, 2024 8:59 AM
duration : 5h 17m 47s
distance : 45 km
total_ascent : 490 m
highest_point : 132 m
avg_speed : 11.8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용미리 용암사 마애이불입상(磨崖二佛立像)
버스에서 내려 약 100여미터 떨어져 있는 용암사 뒤편에 커다란 바위를 깎아 보살상(菩薩像)을 만들어 놓았다. 원래 있던 바위에 손과 가슴 그리고 옷 등을 새겼고 두 명의 보살 머리는 따로 제작하여 올려 놓은 것이었다. 높이가 7.7 미터 된다고 하는데 풍성한 옷을 입은 듯한 보살의 풍채가 위풍당당해 보이고, 머리 부분도 대단히 크고 육중해 보인다. 뒤쪽으로 돌면서 살펴보았지만 그 무거운 머리를 어떻게 올렸는지 의문이 들었다.
마애이불입상은 고려 전기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고려 13대 선종(宣宗 1083-1094)에게 후사를 이을 자식이 없어 세 번째 부인(원신 궁주 이씨)까지 얻었으나 여전히 아기를 낳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중에 원신 궁주의 꿈속에 두 명의 도인이 나타나 “우리는 이 아래 장지산에 사는 사람들인데 먹을 것이 없어 매우 배가 고프오”하고 말하고는 사라졌다는 꿈 이야기를 왕에게 말해 주었다. 그러자 왕은 이를 기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산을 살펴보라 하니 그 곳에 커다란 바위 두 개가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자웅하고 기이하다고 하였다. 왕은 그것이 틀림없이 부처님의 계시라 여기고 그 바위를 깎아 보살을 만들고 그 곁에 절을 지으라 명하였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원신 궁주는 아들을 낳았는데 이는 부처님의 가호라고 여겼다.
물론 이 이야기는 마애불 앞에 세워놓은 안내문에 적힌 전설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13대 선종에게는 이미 첫번째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왕욱, 14대 헌종 재위기간 1094~1095)이 있었다. 그리고 이 마애보살 전설에 기술된 선종의 세번째 부인 원신 궁주에게서 낳았다는 아들(왕윤, 한산후)은 그의 외숙(원신 궁주의 오빠)인 이자의가 왕윤(한산후)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이자의는 처형되고 왕윤(한산후)는 경원군에 유페되었다고 전해진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35744&cid=46621&categoryId=46621
사연이야 어찌 되었든 자연의 바위에 섬세한 보살상을 새기고 그 위에 보살의 머리를 조각하여 올려놓은 기술이 매우 돋보이는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이다.
독수리 식당
다시 큰 길로 나와 774번 버스를 타고 문산으로 향했다. 겨울철에 시베리아에서 날아와 약 3개월간 머물다 돌아가는 독수리 떼를 보러 가기로 하였다. 파주시내를 지나 ‘주내 삼거리’에서 버스를 내렸다. 카카오 맵에서 알려주는 대로 58 번 지역버스로 갈아타기 위해서다. 버스가 언제 도착할 지 알 수 없는데다 배가 출출하여 길 건너에 보이는 떡집에 들어갔다. 떡집 주인은 TV에서 계엄령과 탄핵에 관한 뉴스를 보고 있었다. 한덕수 총리가 특검법도 추인하지 않고 헌법재판관 임명도 회피하고 있다는 뉴스에 혀를 끌끌 찬다. 떡을 사서 먹겠다고 하니 따뜻한 차와 커피를 내어준다. 그러는 사이 지역버스 배차 시간이 매우 긴 것으로 알고 있던 버스가 곧 도착한다고 앱에 표시가 뜬다.
지역버스는 흔히 말하는 시골버스다. 장에 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시골에서 시내로 나가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한다. 운전기사는 타고 내리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말을 붙이며 인사를 한다. 우리가 독수리 식당에 간다고 하니 그는 어디인지 알겠다고 한다. 운전을 하면서 하늘에 독수리가 날아 오르내리는 것을 종종 본다고 하였다.
양수장 입구에서 하차하여 100여미터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니 논 한 가운데 승용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흰색 천막에 네 동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입구 천막에는 “임진강 생태 보존회” 에서 써 놓은 안내문이 붙어 있다. 매주 화.목.토요일 오전 10시에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는 행사를 실시한다는 내용이며, 이 먹이주는 행사에 동참할 사람들의 성금을 바란다고 써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11시가 지나서 독수리들은 이미 식사를 다 마치고 논두렁과 논바닥에 앉아 따뜻한 햇볕을 쪼이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독수리들이 생 닭을 움켜쥐고 부리로 찢어 먹는 모습을 기대했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논두렁을 사이에 두고 길게 펜스를 쳐 놓았다. 긴 대포카메라를 들고 선 사진사들이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며 새들을 관찰하고 있다. 하지만 검은 독수리들은 그런 사진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겠다고 다짐이라도 하듯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다. 그 사이사이 까마귀들이 뛰어다니며 벼 끄트러기를 헤집으며 무엇인가 찾아 먹는 모습이다. 독수리는 얼핏 보아도 족히 100 마리는 넘는 것 같다. 몸에 온기가 퍼지는지 하나씩 하늘로 날아오른다. 육중한 몸이다. 한두번의 힘찬 날개 짓으로 몸을 공중에 띄우더니 금방 하늘 높이 떠 오른다. 그리고 긴 날개를 쫙 편 채 큰 원을 그리며 활공을 즐긴다.
이 독수리들은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철새라고 한다. 임진강 생태 보존회 회원들은 대부분 파주에 사는 사람들인데 모두 연세가 지긋하신 노인들과 주부들인 것 같다. 천막 안쪽에 독수리와 물수리 그리고 재두루미와 황새 등 여러 가지 새들을 찍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허준 선생의 묘소, 덕진산성, 황희 선생의 묘소, 화석정 등 파주 북단과 민통선 안쪽에 있는 문화유산 등을 소개하는 사진도 붙어 있다. 임진강 생태 보존회에서는 원하는 사람들에게 일정한 요금을 받고 민통선 관광 안내를 해준다고 한다.
민통선(民統線)
민간인 통행 제한구역이다. 남북의 민간인들의 접촉을 차단하는 지역이다. 남북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각자 2 km씩 물러나 철조망을 쳤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북방 한계선이다. 민통선은 이 철조망으로부터 남쪽으로 5~20 km 물러나서 설치한 또 다른 철조망과의 사이에 있는 지역을 말한다. 그 민통선이 임진강 강변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잠시 임진강변 뚝 방 아래로 이어진 길을 걷고 마을 뒤편에 있는 ‘장산 전망대’에 올라가 얼어붙은 임진강과 그 북쪽 땅을 바라보았다. 높은 곳에 올라가 보면 여기저기 초소 건물들이 보이고 민통선 안쪽의 작은 마을도 보이지만 눈이 어두운 내게는 철조망은 잘 보이지 않았다. 개미 한 마리도 통과하지 못할 만큼 철통 경비를 서고 있다는 휴전선이 없다면 민간인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는 평화로움이 엿보이는 풍경이다.
다시 문산(文山)으로
문산에서 임진각까지 운행하는 58번 버스는 한 대가 계속 움직이는 모양이다. 우리가 올 때 탔던 그 버스 기사분이 우리를 알아보고 ‘독수리 잘 보셨어요?’하고 인사를 한다. 버스는 경의선 임진강 역까지 갔다가 돌아서 나온다. 따뜻한 버스 의자에 편안히 앉아 잠시 졸다가 깨어보니 문산 역이다. 역 앞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고 전철을 타고 귀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