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hang-si, Gyeongsangbuk-do, South Korea
time : Nov 23, 2024 11:10 AM
duration : 5h 7m 26s
distance : 13.7 km
total_ascent : 887 m
highest_point : 751 m
avg_speed : 2.9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산행 비수기가 되었다. 전국의 대부분 국립공원 탐방로가 가을 산불방지 기간을 맞아 한 달간 문을 닫으면 가을 단풍을 따라 활활 타오르던 산에 대한 열정이 잠시 사그라드는 산행 비수기다. 이 기간에는 산악회에서 지리산이나 덕유산이나 설악산 등 큰 국립공원 종주코스 대신 지방의 소소한 산들 위주로 탐방객을 모집하는 것이다.
포항에 있는 내연산은 늘 내 가슴 한 켠에 남아 있어서 오랫동안 미루어 오던 숙제 같은 산이었다. 대학교 때는 동아리 모임이나 과 모임 등에서 보경사로 야유회를 많이 갔었는데 나는 뭐가 그리 바빴는지 그 때도 가보지 못했고, 여행기를 보면 계곡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하기에 꼭 가보고 싶던 산이었다. 우리나라 100대명산에 들어 있는 산이기도 하다.
열환이와 주말 산행지를 상의하다가 진부령에서 화암사 코스에 가려고 하였다. 하지만 산행 시간도 오래 걸리는 데다가 늦게 화암사로 내려오면 택시를 타고 속초로 나가서 버스를 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제외되었다. 월출산이나 월악산에 갈까 하다가 내가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산으로 내연산에 가자고 하여 선정된 곳이다. 그러니까 아무런 사전 계획이 없이 급하게 정해졌으니 그냥 소풍가는 기분으로 길을 나선다.
6시 50분에 사당에서 출발하는 차를 타려고 알람을 5시에 맞춰 놓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3시에 잠이 깨었다. 다시 잠들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라 책을 보다가 간단하게 짐을 챙기고 아침밥을 먹은 다음 재활용품 배출까지 일을 처리하고 집을 나섰다. 버스에서 지하철로 그리고 또 한번의 환승 끝에 사당역에 6시 30분에 도착하였다. 그렇게 버스에 자리를 잡으면 나머지는 운전기사 님의 몫이다. 편안한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서 유튜브를 들으면서 잠을 청한다. 서울에서 포항까지 340 킬로미터가 넘는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청주에서 서산-영덕간 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이렇고 좋은 길이 생겨도 여전히 먼 길이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속리산 휴게소에서 15분간 쉬었다가 다시 달린다. 집을 나선 지 거의 6시간 만인 11시 10분 마침내 내연산 보경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산행시간은 6시간이다. 오후 5시 10분에 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다녀온 트립을 보니 약 14 킬로미터 정도 된다. 그렇다면 평소대로 사진을 찍으면서 노닥거리면 제시간에 내려오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 된다. 열환이는 이 산을 옛날에 몇 번 다녀갔다고 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 페이스로 갈 테니 나에게 앞서 가라고 한다.
내연산(內緣山)
계곡을 떠나 가파른 산길을 올라 문수암을 지나고 능선에 올라서니 길이 수월하다. 문수봉(628 m)을 넘고 나니 방화선인지 임도인지 능선을 따라 나 있는 길이 널찍하고 평탄하다. 수령이 꽤 되어 보이는 소나무가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발 밑에 작은 돌들이 밟혀 미끄럽다. 길 이정표는 아주 잘 되어 있다. 연인산 정상인 삼지봉을 600 미터 앞두고 길이 갈라진다. 직진하면 삼지봉으로 이어지고 왼편으로는 은폭포로 내려가는 길이다. 삼지봉으로 오르는 길도 널찍하고 평탄하다.
삼지봉(711 m)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향로봉까지 이어진다고 팻말이 되어 있으나 거리가 2.4 km 로 만만치가 않았다. 능선을 따라 계속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5시 10분까지 하산해야 하기에 정상에 오래 머무리 않고 곧바로 되돌아 걸었다.
은폭포 – 선일대 – 관음폭포
삼지봉에서 은폭포까지 내려오는 길은 가파르고 낙엽이 쌓여 있어 자칫 넘어지기 십상이다. 조심스레 발을 디디며 한참을 내려오니 계곡이 눈에 들어온다. 산에서 내려오자 마자 만난 계곡에 수량이 풍부하다. 온통 단단한 바위로 둘러싸인 계곡은 경관이 매우 수려하다. 얼마나 기 세월동안 물이 흘러내려 깎아낸 바위인지 물이 닿은 계곡면은 매끄러운 미끄럼틀 같고 세월 따라 무너져 내린 바위 절벽은 현기증이 날 만큼 위태하다.
물 흐르는 계곡이 좁아 수량이 더욱 풍부한 연산폭포 양쪽으로 깎아지른 절벽 위 한쪽에는 소금강 전망대가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선일대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나는 하산방향으로 계곡의 오른쪽 길을 택해 내려왔기 때문에 선일대 전망대에 올랐다. 아직 단풍이 남아 있는 계곡의 모습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능선 산행을 할 때도 간간히 흩뿌리던 비가 관음폭포를 지나자 빗줄기가 조금 더 굵어진다. 하지만 산행을 하는데 그다지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이어지는 크고 작은 폭포를 구경하면서 내려오다 보니 보현암 앞에 숨어 있는 보현폭포를 지나고 다시 두 줄기 물줄기가 하얗게 떨어지는 상생폭포(相生瀑布)를 마지막으로 계곡 탐방이 끝난다.
보경사(寶鏡寺)
처음 방문한 내연산 산행이라 내 느린 걸음으로 제시간에 내려올 수 있을까 염려했던 데 반해 4시쯤 하산을 완료하고 보경사에 도착했다. 한 시간이나 여유가 있으니 절 구경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산령각, 명부전, 팔상전, 영산전이 뒤편에 배치되어 있고 중간에 대웅전이 있다. 그리고 정면 오른쪽에 범종각이 서 있고 가운데 앞쪽에 사천왕문이 있다. 크고 작은 건물들이 아담하게 배치되어 있다.
602년 (진평왕 24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大德)과 지명(智明)이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다른 한편 사명대사가 썼다는 금당기문에 의하면 서역승 마등과 법란이 중국에서 가져온 팔각경(八角鏡)을 종남산 아래 연못에 넣고 그 연못을 메운 다음 그 위에 절을 지었다고 하여 보경사(寶鏡寺)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바쁜 걸음으로 절 구경을 마치고 주차장이 있는 상가로 내려갔다. 배는 그다지 고프지 않지만 뭔가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식당을 훑어보니 대부분 백숙이나 장어 등 좀 부담이 되는 음식들을 팔고 있다. 다른 데와 달리 국밥을 파는 곳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많은 식당에서 칼국수를 팔고 있다. 비가 축축히 내릴 때는 칼국수도 괜찮은 음식이다. 마침 식당 앞에서 할머니 한 분이 손으로 빚은 칼국수를 썰고 계시기에 들어갔다. 허리가 90도로 꺾인 할머니의 손맛인지 맛이 깔끔하고 국물이 시원하다.
집으로 가는 길
돌아오면서 내연산(內緣山)의 이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절이 산 입구에 있으니 산 이름도 불교식으로 지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혹시 12연기설(緣起說)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부처님은 이 세상 모든 현상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하였다.
지도에 그려진 산의 형태를 보니 문수봉, 삼지봉, 향로봉, 우척봉 등 내연산의 능선에 걸쳐 있는 봉우리들이 계곡을 가운데 두고 이어져 있다. 이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아져 12개의 폭포를 이루며 보경사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내연산이라는 이름이 혹시 안쪽으로 모아지는 물줄기라는 뜻으로 지어진 것은 아닐까? 그런데 왜 12폭포지? 폭포가 12개나 되나? 내가 제일 상단에서 보았던 은폭포 위로도 실폭포, 복호 1,2 폭포가 있고 시명폭포가 있어서 이를 다 합치면 12개의 폭포가 있다고 하는데 그 폭포의 기준은 뭘까? 설악산에도 12선녀탕 계곡이 있는데 이 십이(12)라고 하는 것은 그저 상징적인 의미만 갖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이 들었다 깨었다 반복하며 속리산 휴게소를 잠시 들르고, 갈 때와 마찬가지로 서울로 돌아오는 길도 원활하여 4시간 걸려 9시에 양재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묵은 숙제를 끝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