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an, South Korea
time : May 10, 2025 7:15 AM
duration : 5h 12m 35s
distance : 14.3 km
total_ascent : 160 m
highest_point : 176 m
avg_speed : 2.8 km/h
user_id : dbwoaud
user_firstname : 재명
user_lastname : 유
영도는 절영도(絶影島)다. 과거 영도 국마장에서 자란 말은 워낙 빨라 달리면 그림자(影)가 끊어져(絶) 보였기 때문이다. 신라시기 영도에는 맹금류가 없고 서라벌에서 가깝워 말을 키우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동국여지승람에 후백제왕 견훤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절영도산 명마 한 필을 선물했다는 기록도 있다. 영도는 한국 최초로 고구마를 재배한 곳이기도 하다. 1763년 조엄(조선)이 조선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이때 일본에서 고구마 종묘를 입수하고 1764년 영도에서 고구마를 처음으로 재배했다.
지금의 영도구는 임진왜란 이후 공도 정책에 따라 일시적으로 무인도가 되어 조선시대까지 별다른 지명 없이 동래부 소속의 부속도서로 존재했으나, 1881년에 절영도진이 설치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부산항 일대가 개발되면서 점점 도시화되었고, 일본인들은 '말을 키우는 목장의 섬'이라는 뜻의 마키노시마(牧ノ島)[목도]라고 불렀다. 1934년 영도대교의 개통으로 교통이 편리해져 부산 시가지의 일부가 되었으며, 해방 이후 행정구역을 조정하면서 '절'자가 빠지고 영도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 때 미쓰비시사가 1937년 7월 10일 부산 영도에 조선중공업주식회사(현 HJ중공업)를 설립. 1938년 3,000톤 급 건조대 2기, 6,000톤 급 도크를 갖추면서 본격적으로 조선업을 시작했다. 국내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의 설립이다.
6.25 전쟁 당시 영도구 태종대에서 첩보부대인 영도유격대가 창설되어 여기에 본부를 두었다. 또한 최후방어선 지역이었기에 피난민들이 영도로 대거 몰렸고, 이때문에 1950~60년대생 유명인들의 출생지나 성장지가 영도인 경우가 꽤 많다.이렇게 인구가 급증하자 1951년 9월 1일 영도출장소(影島出張所)가 설치되었는데 행정편의상 절(絶)자를 빼고 영도(影島)라고 하였다.
영도에는 동삼동 패총 유적지가 있다. 신석기 중기 유적이니 8000년 전쯤 이땅에 살던 사람들의 흔적이다. 이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던 땅을 오늘 걸었다. 갈맷길 3코스 3구간이다. 흰여울마을 초입의 주차장에서 시작해서 중리바닷가와 태종대, 해양박물을 지나는 길이다. 13.5km라고 표지판에 써있지만 좀 더 긴듯한 느낌이다.
흰여울마을은 절벽가에 위태롭게 지어진 집들이 자아내는 풍경이다. 아마도 한국전쟁 당시 물밀듯 미여들어온 피난민들이 만든 마을일 듯 싶다. 이제 이 흰여울 마을은 낮이면 내국인 보다 외국인이 많은 곳이고, 마을을 단장하면서 곳곳에 카페와 식당이 즐비한 곳이 되었다. 흰여울이라는 이름은 공모로 지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나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의 갈맷길은 흰여울마을 아래쪽 해안을 걷는 길이다. 아찔한 벼랑위로 집들을 바라보며, 건너편 송도해숙욕장과 남항대교 넘어의 부산항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길 중간쯤 아마도 군대가 주둔하며 만들었을 터널은 사진찍기의 명소다. 지금 이 길은 한참 공사중이다. 꽤 긴 구간을 막아놓아서 윗쪽으로 우회 할 수 밖에 없지만 이또한 나쁘지 않다. 바다를 내려보며 맑은 날씨에 멀리 시야를 확보한다.
흰여울마을을 어렵사리 돌아 내려가면 75광장과 중리바닷가가 나온다. 1975년에 조성되어 75광장이라고 한다. 이름이 직설적이만 와닫지는 않는다. 중리바닷가에는 일볼관조대가 있다. 왠지 운치에 넘치를 것디. 중리바닷가에는 주차장이 있고, 식당도 여러군데 있다. 식수가 필요하면 여기서 사야한다. 여기서부터 새로난 길을 타고 올라가면 태종대에 닫는다. 꽤 가파르고 힘이들어 한번은 쉬고가야 한다. 꼭대기에 이르면 태종대 조기구이 집들이 보인다. 맛은 어떤지 모른다. 지나다보면 가게가 꽤 많다. 부산 소개에도 가끔 나온다.
『동래부지』(1740년)에 의하면, 태종대는 신라(新羅) 제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이 이곳에 와서 활을 쏘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정복의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는 '신라의 태종(太宗)이 대마도(對馬島)를 토벌할 때 주필(임금이 거둥하는 중간에 어가를 멈추고 머무르거나 묵던 일) 하였던 곳' 이라고 한다. 조선 제3대 태종(太宗)이 그 치세 말년인 1419년에 큰 가뭄이 들자, 그 해 5월에 태종대를 찾아 비 내리기를 빌어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태종대는 부산의 대표적인 명소다. 나도 옛적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있다. 오늘은 동무가 있으니 태종대 휴계소에서 아침겸 요기를 한다. 태종대 휴계소에 3코스3구간 중간인증대가 있다. 태종대를 돌아나오면 슬슬 길의 끝이 보일듯한 기분이 든다. 좀더길을 따라 가다보면 동삼동 패총이나오고, 아미르 공원과 국립해양박물관이 나온다. 북항건설 때 나온 흙으로 조성한 곳이라고 한다. 넓은 공원에 잘 가꾸어진 풀숲이 싱그럽다. 코스의 끝이 어정쩡해서 택시로 흰여울마을 입구 주차장까지 이동했다. 맑은 날이고 행복한 날었다.